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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예수님께로 오게 된 나귀 새끼 The colt being come to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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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로 오게 된 나귀 새끼  The colt being come  to Jesus.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장면이 복음서에는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가자  사람들은 자기 옷을 벗어서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가는 길에 깔아드립니다. 예루살렘까지 얼마되지 않는  벳바게와 베다니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근처에 위치한 벳바게는  아직 익지 않는 무화과들의 집 과  베다니는 번민하는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면 주무시던 곳이기도 합니다.
즉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번민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평강을 주시려고 오십니다.  예수님은 제자 두사람에게  권위와 권세있는 사명을 주십니다.예수님은  건너편 마을에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끌고 오라고 합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나귀 주인과 합의도 없는데  끌고 오라는 명령을 순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직 한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목적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흠없고 점없는 정결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제는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오래동안 앞을 보지 못하다가 길거리에서  만난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고 앞을 보게된  바디메오도   따라옵니다.
메시아로서 어떤 일을 하신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강과 모든 구속과 굴레로부터 자유케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 동네에 매여 있는 나귀새끼  한마리에  별관심이 없지만, 예수님에게는 매여 있는  저 나귀 새끼를 안타까움과 가슴아픔으로 여기기 때문에   묶임에서 자유함과 평강을 주고자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참 자유를 얻어  자유를 넘어 고귀하고 거룩하고    매우 소중한 존재로 쓰임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전해주시기를 원하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묶여있는지 아닌지를 잘 분별합니다. 복음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이 묶여있다는 사실을 알면  참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을 찾고 찾습니다.
자신이 죄로 묶여있는지, 삶에 얽매여있는지, 사람에게 묶여있는지, 욕망에 매여있는지를  깨닫고  인지하는 사람은   해방될 수 있는 본질적인 대책을 세웁니다.  묶여있는 사람은 몸부림을 치면 칠 수록 더 조여집니다. 하지만 묶여있는 나 자신 밖에 계신  예수님만이   묶여진 내영혼과 내 삶에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다가 나귀새끼를 풀어 끌고 오는 환경 때문에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에 순종하여  마을로 내려가는 두제자에게  주인이 "왜   나귀를 풀어 끌고가려고 하느냐?"라고 물어보면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스스로 메시아심을 나타내십니다.

매여있는 한 마리의 나귀도  온당치 못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이  죽음과 절망과 실패와 죄에 매여 있는 '나'야  얼마나 풀어주시고 싶어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내 영혼의 주인으로 삼으시면 자유케 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시려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그길은 십자가를 지으시러 가는  죽음의 길이요, 하나님께 향한 순종의 길입니다. 
이 날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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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김효정님의 댓글
예수님만 모든 묶임에서 저를 자유케하심을 믿습니다.
종려주일을 기억하며 한주간 주님께 더 깊이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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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명숙이님의 댓글
아멘!! 내영혼에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온전히 주인삼고 주님앞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