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좋은 대화 속에는 소통이 있고. 약속이 있고, 꿈이 있고, 현실이 있고, 힘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삶의 맛이 있습니다.
대화는 보편적이면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과도 이뤄지고, 아주 어린 꼬마와도 지장 없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상관없이 말은 통합니다. 말이 안통하면 그것처럼 답답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다가 상대방이 답답하다고 여기면 '우물 안 개구리'라고 말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중요한 문제를 놓고 하루 종일 열띤 토론을 하고 최적의 결론을 내리려고 하면 마지막에는 다시 '우물 안 개구리'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 틀에 집어넣고 맙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습득한 지식 세계가 전부입니다. 누군가가 위대한 지식을 전해준다 할지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 밖의 것들은 모두 부정해버립니다.
매우 값비싼 존재라 할지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평가하는 값이 아니면 쓰레기 취급 받고 맙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공동체에서나 자기 자신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우물 안 개구리'일 것입니다. 집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모든 기준을 자기가 갖고 있는 자기 세계에다 맞추는 '우물 안 개구리'하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 영역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우물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해도 "저 위에는 파란 하늘과 구름 밖에 없어"라고 반박하고 절대로 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매도해버립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알량한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고집부립니다. 누군가 우물에서 꺼내기라도 할라치면 사생결단하고 나섭니다. 그래도 안 되면 순교 아닌 순교라도 하려고 생명까지 바칠 태세를 취합니다.
'개성', '자기 스타일' 등등 현대사회에서 많이 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개성'이나 '자기 스타일'을 지키는 것이 '우물안 개구리'같은 입장이라면 그런 '개성'이나 '자기스타일'은 자기 자신을 병들게 하는 '독소'와 같은 것입니다. '개성'이나 '자기스타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은 '열린 의식'이나 '열린 가치관 '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자신을 잘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내부에서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언제든지 열린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호수에 새로운 물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곳이 열려있어야 물이 썩지 않듯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저 사람이 이제는 바뀌었으면 해서 충고를 해주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아, 그것은 제스타일 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라는 강력한 거절이거나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뀌지 않네요."라는 전혀 노력하지 않으면서 마치 최선을 다한 것처럼 말합니다. 진정한 도전은 '자기개성', '자기스타일'에 붙잡혀 속 좁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를 대변하는 도구로 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서 존중받고 사랑받는 '예수개성','예수스타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인정만하고 살아도 발전을 향한 멋진 도전을 시작한 것입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그 가치관이 빨리 깨져서
명예와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