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려면
새해에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새로운 다짐과 의지를 갖고 시작을 합니다. 다짐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은혜 넘치는 결과를 얻을 것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주께서 놀랍도록 베푸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풍성히 주시는 역사를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믿는 자로서 꼭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물론 '믿음하나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며 믿음이면 충분조건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사상'이나 '철학'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믿음은 실천을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바늘만 있고 실이 없다면 근원적인 꿰매는 일은 할 수 없고, 온전하기는 커녕 구멍만 만들고 맙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데 있습니다. 실행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실천적인 믿음의 삶은 살리는 역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실천하는 삶의 현장들은 때가 되면 우리가 계산 할 수 없는 풍성한 결과를 얻도록 해줍니다.
믿음은 모든 것의 출발이며 모든 것의 열매입니다. 믿음 없이 결과만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면 결심과 다짐은 망상이나 다름없습니다. 믿음을 실행으로 옮겼을 때 삶의 열매는 믿음의 근원되시는 주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했던 조지 애틀리라는 젊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자기의 숙소 주변 지역을 탐사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면서 사나운 맹수의 공격을 받을 때를 대비해서 성능이 아주 좋은 자동소총을 휴대했습니다. 어느 정도 숙소에서 멀리 갔습니다.
갑자기 인근에 사는 원주민들이 창과 몽둥이를 들고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애틀리는 마음속에 살기 위해서 그들을 향해 자기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원주민 가운데 누구라도 다치거나 죽게 된다면 그 지역에 선교를 목적으로 왔지만 선교는 영영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대신 죽임당한 어린양처럼 순순히 총을 든 채로 원주민들에게 잡혀 개처럼 끌려가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로 맞고 사지를 찢기는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누구에게도 볼 수 없는 평온함과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추장은 선교사가 지녔던 총을 조사해보니 성능 좋은 영국제 자동 연발총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총 속에는 열 발의 실탄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추장은 이 사실을 알고는 그의 고귀한 뜻을 깨닫고 죽은 선교사의 얼굴에 입 맞추며 존경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족속들 앞에 "이 사람은 진짜로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이 사람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곳 원주민들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뜻을 가지고 선교지를 가든, 결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든,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분명 주님께서 멋진 결과를 이루십니다. 자기 의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희생은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실천 있는 온전한 믿음생활은 자신의 신앙과 진리를 신앙답고 진리답게 해주는 장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