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를 현재처럼 보는 것입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미래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가 말하는 것은 과거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라고 역사를 들춰내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아픈 것은 아픈 것대로 역사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들춰내지 않으면 역사에 대한 건망증에 빠지게 됩니다.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를 덮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선은 마음이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 아픔을 또다시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를 드러내는 것은 다시는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기억장치입니다.
비단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으로 부터 받은 수많은 은혜들을 받았는데 까마득히 잊고 산다면 은혜받기 전의 모습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길을 가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몇 년씩 있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삶아가는 인간들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믿는 자들을 말을 할 때 '이 세상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비아토르(viator)’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들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잠깐 이 세상을 지나가는 과정가운데 있다 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저 높은 곳에 시선을 두고 갑니다. 그곳에 영광, 영혼의 은혜와 주님과의 동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주님의 뜻에 예민할수록 주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과거의 많은 은혜에 대해 기억하고 다시 꺼내 기억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셨던 것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됨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흔적들을 조성할 것을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바르게 기억해야 그 의미를 살릴 수가 있습니다.
기념비를 세우는 이유는 그 당사자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비 자체만을 기억하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하는 '제사'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데 초점이 있지만 '제사'자체만을 중시여기는 바람에 본질에서 벗어나 결국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가지는 일이 있었고, 가정들은
제사로 모이는 날이 갈등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올바른 기억은 서로가 사는 상생의 역할이 되고 미래를 열어가는 길목이 됩니다.
올해가 해방 된지 70년 째 되었습니다. 무엇을 기억해야 되는지 잘 알아야 됩니다. 70년이라는 세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기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70년 전에 있었던 아픔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반복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 과거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형편이나 사정이 전에 비하여 나아진 사람이 지난날의 미천하거나 어렵던 때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잘난 듯이 뽐냄을 비유적으로 쓰는 말인데 과거를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교만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삶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고 회복되었으면 다시는 그 고난의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과거와 그에 따른 받은 은혜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기억창고에 삶의 많은 잡동사니들을 기억하지 않고 받은 은혜들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