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맛
사람은 어느 정도 소유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줄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지면 잠깐은 기쁠지 모르지만 계속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책임이라는 것과 권리라는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가면서 즐거움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 국민은 그 나라 사람으로서 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의무를 잘 감당하기 위한 도전은 필수입니다. 국민으로서 의무에 따른 보호와 공유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때에 기쁨을 누립니다.
책임을 감당해놓고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할 때에 법적투쟁을 통해서 정당한 혜택을 찾아와야 되는 도전이 시작되고 이 싸움에서 승리 할 때에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그에 맞는 역할은 무엇인지를 강조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 대한 정체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 정체를 표현하는 것은 소금의 모양을 말하지 않습니다.
소금을 모양으로 표현하려고 한다면 심각한 오해에 빠지게 됩니다.
차돌멩이나 소금모양과 비슷한 백반을 가지고 소금이라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너는 소금 맛을 지녔느냐 입니다.
소금은 모양 때문에 대접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맛 때문에 대접받습니다.
소금이 소중한 값이 나가는 것은 바로 본질적인 소금의 짠맛 때문입니다. 짠맛을 지닐 때 최고의 값이 주어집니다. 이런 옛날 얘기가 있습니다. 세 딸을 둔 왕이 각자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봐라"고 했습니다. 첫째 딸은 "다이아몬드", 둘째는 "넓은 땅", 셋째 딸은 "소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셋째 딸의 '소금'이라는 말을 듣고 왕은 마음속으로 혹시 판단력이 떨어진 딸이 아닌가하는 심려가 생겨 물었습니다."무엇 때문에 소금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것이냐?" 라고 염려스런 말투로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한나절 안으로 소금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실 것입니다."라고 셋째 딸이 대답했습니다.
왕의 식사가 준비되고 있을 때 셋째 딸은 왕의 식탁에 소금을 전혀 넣지 말라고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밥상을 받은 왕은 화가 나서 "무슨 이런 음식이 있느냐?"며 요리책임자를 문초를 했습니다. 그때 셋째 딸이 달려가 "아버지, 어떻게 왕의 식탁에 값도 나가지 않는 하찮은 것을 넣을 수 있습니까?, 대신 보석가루를 넣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은 그때서야 "그래 너의 말이 맞구나, 넓은 땅이 없어도 살고, 다이아몬드가 없어도 사는데 소금이 없으면 밥도 먹고 살수가 없겠구나!"라며 오히려 셋째 딸이 분별력이 뛰어나다며 높은 직책을 주었습니다.
최고의 값이 나가기를 원하신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로서 소금 맛을 지니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