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부지깽이
어린 시절에 저는 공부에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6.25전쟁의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골 환경에서는 친구들과 전쟁놀이하고 노는 것이 더 재미있고 의미 있어보였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전투가 심했던 장소 얘기를 듣고 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놋이나 구리로 된 총알들을 통째로 찾을 때는 우리들끼리 횡재했다는 잔치의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버려진 실탄을 주어다가 엿장사에게 주고 엿을 사먹는 것은 아이들과 더불어 뿌듯한 보람이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함께 동네 자주 찾아온 상이군경 아저씨들의 구걸에 몇 달 먹어야 할 쌀을 쌀 둑에서 반절 넘게 퍼주어 어머니를 난처하게 했을 때도 정도껏 하라고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자기 집에서 쌀을 훔쳐다가 모아서 팔아 소중한 장난감을 샀습니다. 그날 밤 친구들 집집마다 쌀 도둑이 들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도둑은 다 자기 집안에 있는데 부모님들은 도둑을 잡아야 된다고 삼삼오오 모여 얘기들을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고 "너희들 낮에 동네에서 놀았는데 도둑이 온 줄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 집도 아니고 일곱 집이 쌀 도둑이 들었다는 것은 그 도둑하고 너희가 한통속이든지 아니면 너희가 도둑이든지 그렇다"라는 논리적인 말씀에 바로 손들고 "제가 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용서받고 싶었는데 그냥 버티고 있었더니 어머니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이 말씀 저 말씀
으로 제 마음을 옥죄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래도 항복을 안 하니까 "내가 내 눈으로 안 봤는데 너가 범인이라고 어떻게 말하겠느냐?"라며 한숨을 쉬며 나가셨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아침에 일어나 차가워서 부엌에서 불을 지피시는 어머니 곁에 앉았습니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저에게 쌀 사건에 대해 또 말씀을 꺼내십니다. "너희들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데 동네에서 놀면서 도둑을 못 봤느냐?" 고 묻습니다. "예, 다른 집은 도둑이 가져갔는지 모르지만 저의 집은 제가 가져갔습니다."라고 고백하자 순식간에 부지깽이(아궁이 불을 정리할 때 쓰는 막대기)가 저의 등짝에 내려쳐졌습니다. 몇 대를 그렇게 등허리를 맞고 나서 "교회 다닌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칼바람'이라는 만화책을 한권 사오셨습니다. 책을 사주면 좋은 자식 될 것 같아서인지 제가 만화책을 좋아하신 줄 아시고 동네 아저씨에게 물어서 사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만화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글로 읽는 것이 더 많은 상상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에 시골에서는 책도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용기와 의리 그리고 정직을 내용으로 하는 만화였습니다. 어머니 본인은 글도 잘 읽을 줄 모르시면서 자식을 위해 사오셨다는 것자체가 놀라워서 다음날 연거푸 몇 번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봤습니다. 이런모습으로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그 일이 있은 후에 나름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좋은 책 하나 사주지 못해서 아들이 이렇게 되었나 하면서 자책감을 가졌을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려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버렸습니다.
삶의 순간들 마다 마음 깊은 곳에 용기와 감동과 훈계를 주셨던 저의 어머님은 이 땅에서는 뵐 수 없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이제는 그 어머니의 부지깽이도 회초리도 잔소리도 꿀 송이처럼 들을 준비가 되었는데 안계십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그 회초리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