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진작 말하지 그랬어!
오늘은 책상 서랍을 열다가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목사님,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오랫동안 말씀전해주세요."라는 주일 학생이 쓴 생일카드에 적힌 내용입니다.
이 아이는 평소에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쪽지를 읽을 때도 그 아이 모습이 여전히 중첩됩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선물이전의 것이고 물질 이전의 것입니다. 물질은 마음을 대신해서 다 표현해줄 수 없습니다. 일하는 것은 육신의 일이고 표현하는 것은 마음의 일입니다. 마음의 일을 소홀히 여기면 육체의 수고가 헛되기 십상입니다.
동네에서 부부사이가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있었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서 가끔은 고구마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았습니다.
고구마를 굽거나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나눠서 먹곤 했습니다.
먹을 때마다 남편은 김치와 함께 먹었습니다.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며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사랑하며 살아오던 이부부도 어느 정도 살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두아들은 성장하여 서울과 부산에서 제법 큰 사업을 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고, 딸은 중동에 나가 있는 한국대사관의 부인입니다. 둘째 딸은 중소도시의 시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자식들이 뜻을 합하여 부모님 45주년 결혼기념 잔치를 해주기로 하고 커다란 부폐식당을 빌렸습니다.
많은 일가 친척과 자식들의 지인들이 축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노인부부는 너무 너무 행복하고 뿌듯했습니다.
사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인사 받느라고 음료수 한 컵 제대로 마시지 못했을 정도로 바빴던 시간이었습니다. 손님들도 가고 자식들도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에 이 노인부부는 자신들이 사는 보금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고, 오늘은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할머니가 말하자 ,"다 당신덕택에 자식들이 잘 돼서 이런 호사를 누렸습니다!"라며 할아버지가 말을 받았습니다. "근데 잔치 날인데 나는 배가 고파요, 뭔가 해먹읍시다."라고 할머니가 말하자."그래 할멈, 옛적에 먹었던 고구마나 구어 먹읍시다."라고 할아버지가 응답해서 고구마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막 구어 낸 대 여섯 개의 고구마를 접시에 담고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를 내왔습니다.
상에 올려 진 고구마와 김치를 보고 "참 먹을 것 귀하던 옛날이 생각나네요."라고 할머니가 말을 하자 할머니는 "그래요 그때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잘 견디어 온 것만 생각해도 감사하고 기쁘네요."라며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큰 고구마를 하나 들고 반으로 잘라 그 위에 긴 김치가닥을 둘둘 감아 맛있게 고구마 반개를 단숨에 먹어치웠습니다. 이번에도 예나 다름없이 아예 김치 그릇을 자기 앞에 갖다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늘 그랬듯이 고구마보다 김치가 먼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한 참 보다가 할머니가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기분 좋은 잔치 날에도 예나 다름없이 김치를 갖다놓으면 혼자 다 먹어버리시군요. 나는 당신이 김치를 늘 먹어버리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고구마만 먹어서 속이 아프지만 지금까지 참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이런 잔치 날에는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어요, 나는 당신을 위해서 김치랑 같이 고구마 먹고 싶었지만 꾹 참고 김치 없이 고구마만 먹어 왔습니다.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알기나 하세요!"라며 할머니가 울자. 할아버지는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한참을 울다 멈춘 할머니에게 다가간 할아버지가 "할멈, 진작 그 말을 해주지 그랬어! 나는 당신이 나먹으라고 김치 준것을 당신은 좋아하지 않아서 내게 밀어준 줄 알았어요. 나는 사실 할멈 고구마 하나 더 먹으라고 고구마에 김치를 감아서 먹고 짜서 물을 많이 먹었지요. 나는 김치랑 먹는 것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요."라며 마음시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처럼 마음속에 담아놓기만 하고 있지 표현을 하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표현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듯이 수없이 표현해야 될 것들을 마음 보따리 속에 묶어 놓기만 하고 있으면서 "왜 당신은 지금껏 말하지 안했어?"라고 오히려 상대방을 섭섭해 합니다. 주는 것이 인색한 사람은 표현하는 것도 덩달아 인색해집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