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서
강원도에 있는 속초를 가기 위해서는 왕복 2차선을 달려 양평을 들러야만 빨리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에 쫓겨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서 그런지 계속 운전하고 가기에는 허기가 깊어졌습니다. 가게를 찾아 음료수와 빵같은 요깃거리를 사려고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지나치고 지나치다가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니 약간 큰 가게를 찾았습니다. 주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를 건넵니다. 듣는 둥 마는 둥 안쪽으로 들어가 살 것을 골라 계산대로 가니 몇 분이 제 앞에 줄을 서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바쁜데 빨리 빨리 했으면 좋겠는데, 뭔 시골가게에 손님이 이렇게 많아!”라며 약간은 불만 투로 제일 뒷줄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바쁜 저에게는 매우 긴 시간으로 느껴졌는데, 사실은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기분 좋았습니다. 남자 주인이 손님을 대하는 모습이 어찌나 다정스럽고 자상하고 계산도 정확히 하던지 그 자체를 보고 있다 보니 금방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주머니 이 우유는 무슨 회사 제품인데요. 단백질 많고 칼슘이 많아서 아주머니 큰 아이보다 둘째아이가 약하게 생겼으니까 그 아이에게 먹이시고요. 이 제품은 카제인이 많으니까 먹이지 마세요. 여러 개 살 필요는 없어요. 진짜는 이런 우유보다 집에서 아주머니 정성들인 밥을 아이들이 잘 먹으면 그것이 최고지요, 굳이 우유 살 필요가 있겠어요?”
“아이고, 영감님! 지난번 감기로 고생하시더니 지금은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할머니는 안녕하시지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하는 모습이 물건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 마치 자기 가족에게 물건을 전달해주는 섬기는 자의 정성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저의 순서가 되자 “너무 기다렸죠? 죄송합니다. 멀리에서 오셨는가 봐요? 제가 저희 가게 오시는 분들은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빵을 사신 것 보니 식사를 못하셨나 봐요? 떡 드릴게요. 오늘 아침 저희 아버지 생신이라 절편을 했습니다. 아직 굳지 않아서 맛있습니다. 빵보다야 떡이 손님 건강에 좋습니다. 빵은 내려놓으시고 음료수만 사가세요.”라며 떡을 접시에 가득 담아 주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순서에 따라 손님들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봤는데 왜 죄송하다고 할까? 참 깍듯이 사람을 대하신 분이구나! 라고 생각을 말을 건넸습니다.
“저 안쪽에 성경말씀 족자가 있는데 선물 받은 것입니까?”
“아니요, 저는 원래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엉터리 신자입니다. 저는 기독교에는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옆에 사는 집사님이 계시는데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지 몰라요, 저도 누가 예수 믿으라고 하면 오히려 반발하고 그러는데요. 이분은 진짜 예수 믿는 집사님이세요. 저는 그분이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으세요.“ 라는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예수 믿기 위해서 교회 오시라는 부탁을 듣고 설렘으로 교회에 난생처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가 나오면서 “성도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믿는 분이라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성도님을 이렇게 만나니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저보고 오히려 예수님 믿으세요? 인상이 예수님 믿는 분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커다란 음료수병을 안겨줍니다. 목사라고 말하지 않길 다행이었습니다. 목사라고 말했다면 더 큰 것으로 신세 질 뻔했습니다. 가게를 나와 자동차를 운전하며 기분이 무척 상쾌했습니다. 예수 안에 만남이 이렇게 기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복음을 드러낸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기에 더욱 즐거웠습니다. 복음이란 아주 작은 것에서도 시작됩니다.
우리 삶의 현장을 믿음으로 살아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은혜를 누리고 살 수 있는 복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몇 년 후에 다시 한 번 양평에 있는 가게를 찾았지만 4차선 우회 도로가 생기면서 가게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향기는 불고 있었습니다. 그 근처에 예쁜 교회가 세워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