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배가 고파요.
“요즘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요.”라며 넉살을 떨며 셋 중에 제일 먼저 국도가 부엌으로 향합니다. 국도는 양푼에 김치, 밥, 무슨 반찬이든 집어넣고 그 위에 큰 유리병에 담긴 참기름을 듬뿍 부어 비벼서 부엌에 앉을 겨를도 없이 폭풍흡입을 합니다. 3개월 째 국도는 집에만 오면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먹는데 열심입니다. 우리 둘이서 씻고 나가면 양푼 가득한 엉터리 비빔밥이 떨어져 가는지 양푼 긁는 소리가 들립니다. 세 명이 학교에서 하숙집에 돌아오면 밤 10시 반쯤 됩니다. 벌써 하숙집 가족들은 대부분 잠들고 부엌문만 열어 놓습니다. 우리 둘은 하숙생이고 국도는 하숙집 큰 아들이고 한 학년 후배입니다.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이 다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점심과 저녁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갑니다. 한참 성장기지만 얼마동안은 더욱 먹는 것과 전쟁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하숙집 아줌마가 저를 불러 세우고 궁금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왜 국도는 저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붙어?”,“네, 너무 걱정 마세요. 키가 크는 중이여서 그럴 겁니다.”, “국도는 자기 아빠 닮아서 키가 안 클 텐데!” 그런데 제가 봐도 자꾸만 야위어가는 모습이 신경이 쓰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 집에 하숙하면서 국도를 전도했었고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후배가 되었습니다. 국도 어머니는 “교회 데리고 다니는 것은 뭐라고 안할테니까 대신 너만 믿는다. 행여라도 우리 국도 잘못되면 네가 다 책임져야 해,”라며 부담되는 당부를 했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국도에게 “야, 너 요즘 살이 빠진 것 같다. 무슨 일있나?”, “형, 무슨 일은 무슨 일이 있어,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걱정하지마, 형”하며 씩 웃습니다.
모처럼 토요일 일찍 끝나서 2시쯤 하숙집에 들어와서 학생부 토요예배를 준비하려는데 국도 어머니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한손에 도시락 쌌던 보자기와 또 다른 손에는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는지 물기가 흥건한 빈 도시락을 들고서 “병덕아, 이것 좀 봐라 도시락 안에 있더라.”라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국도 친구 경배입니다. 몇 달 동안 제 도시락까지 싸 주셔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저에게는 도시락이 꿀맛이었고, 하루를 사는 음식 이었습니다.국도가 아니었으면 저는 어머니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힘들어서 학교도 못 다녔을 것입니다. 국도는 매일 나를 위해 저녁 식사 후에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기도해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맛 벌이 부모님의 외동아들이었지만 국도가 형제가 되어주고 주변에서 도와주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선물이 준비되면 꼭 가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저도 예수님 믿게 되었습니다. 국도 같은 좋은 아들을 두셔서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써있는 종이쪽지를 읽었습니다.
국도 어머니는 이제야 국도가 아침을 집에서 먹고, 학교에서 도시락 두 개를 먹고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도 자꾸 야위어 가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잠자리에 무슨 밥을 많이 먹느냐며 핀잔을 주었던 것이 못내 국도에게 미안하기도하고, 멋진 아들을 생각하니 흐뭇해서 그렇게 우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우신 후에 방문을 나서면서“우리 아들 훌륭하지?, 아무래도 나도 교회 나가야 할 것 같아!”라며 부엌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국도를 따라 그 다음 달부터 예수 믿기 시작했습니다. 얼마후에는 신사이지만 신앙적으로는 매우 강팍했던 공립학교 교감이신 국도 아버지도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국도는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도 힘써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오랜 후에 지인으로부터 국도는 외국에서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을 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때 제일 확실합니다. 전도 그 자체가 사랑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데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지옥으로 빠저들어가는데 전도하지 않고 먹을 것 주고 같이 놀아주기만 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향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면서 "어서 가서 사랑하라"라며 가슴을 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