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짜증낼 이유를 넘어
짜증낼 이유를 넘어
감사도 감사할 이유가 있고요 불평도 불평할 이유는 있습니다.
그런데 불평할 일이 있어서 불평한다면 불평할 이유는 훨씬 많아집니다.
그러나 원망할 이유가 있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불평이 변해서 노래가 됩니다.
한 칸짜리 옥탑 방에 8식구가 함께 살았던 분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이 한 방에 살았습니까?"
"그런데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사업이 완전히 망하게 되니까 갈 곳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구한 거처지가 근린상가 맨 위 층 옥탑 방이었습니다. 커다란 방 하나짜리였습니다. 잠 잘 때면 적은 면적을 활용하기 위해서 한사람이 머리를 두면 상대방은 발을 두면서 잠을 잤습니다. 두 달 간은 서로 다 적응이 되지 않아서 짜증들이 많았습니다.
각자 방을 쓰다가 한방에 살게 되니까 서로다 어찌할 바를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석 달이 지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잘 잤습니다. 온 식구가 한 방에서 지내다보니 누구 한 사람 얘기하면 모두가 공유하게 되고 함께 웃게 되는 마음이 소통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식사시간은 더욱 재미있습니다. 밥상이 없으니까 벼룩시장 종이가 식탁이 됩니다. 모두 한 자리에서 함께 먹습니다. 전에는 아이들이 학원 다닌다고, 과외 간다고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 없었지만 이제는 벼룩시장 종이 식탁에서 더불어 먹습니다.
옥탑방문을 열면 동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펼쳐집니다. 숨어 지내거나 쫓겨 가는 옥탑 방이 아니라 높고 넓은 전망대 위에서 눈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면서 거느리는 왕들의 거처지 같은 느낌이 들어 행복했습니다. 여름밤은 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온통차지는 넉넉함에 만족해했으며, 옥상에 만들어 놓은 빨랫줄은 희망의 통로였습니다. 빨랫줄에 걸려있는 빨래들이 펄럭이면 소망을 날라다주는 희망 줄이었습니다. 옥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은 '도래미파솔라시도'라고 노래하는 음계였습니다. 옥탑 방에서도 우리 가족 중에 누가 계단을 올라오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2년 반을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처음 사업이 망해서 모든 가재도구까지 채권자들에게 다 넘어가 가진 것이라고는 부르스타와 몇 개의 플라스틱 컵과 컵라면 그릇과 다시 씻어 사용하는 나무 젖 가락이 전부였습니다.
누가 쓰다 버린 밥상하나 주워가지고 오면"진짜 좋은 것 얻었다"며 횡재 만난 사람처럼 온 가족들은 잔치분위기였습니다. 어느 날 자녀들 셋이서 길가에 놓여 진 서랍장을 가지고 와서는 덩실덩실 춤을 추워댑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마트에서 주는 비닐봉투에 각자 옷을 담아놓았는데 새로운 수납공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헌것이든 새것이든 하나 하나가 감사였습니다. 지금은 여건이 회복 되어 각자 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망할 때처럼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자만이 주어진 환경을 넘어 노래 할 수 있습니다.
불평도 자랍니다. 불평은 씨앗이 있어서 뿌려놓으면 언젠가 열매를 수확하게 됩니다.
감사도 똑같이 자랍니다. 감사도 씨앗이 자라서 많은 열매를 갖습니다. 감사를 심고 감사를 추수하는 추수감사절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짜증날 만한 이유를 넘어서면 감사할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명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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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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