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
사람은 무엇인가에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희망은 삶의 끈이 되기도 합니다. 소망의 끈이 되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성탄절입니다. 온 인류에게 참 희망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희망 자체로 오신 것입니다.
단편 소설 중에 오헨리가 썼던 ‘마지막 잎새’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에 창밖에 있는 담쟁이 잎새가 떨어지고 얼마나 남았는지 세고 있는 존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존시는 폐렴에 걸려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한 채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자기를 극진히 간호해주는 친구 수우에게 “저 가엾게 지친 잎처럼 아래로 떨어지고 싶어”라며 고백을 합니다. 이들이 있는 바로 층에는 베르만이라는 노인화가가 살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무명의 화가인 베르만은 수우를 통해 존시가 안타깝게도 희망의 마지막 끈으로 담쟁이덩굴에 있는 잎새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존시는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잎새 마져 내일 아침에는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며 삶의 끈을 놓아버릴 준비를 합니다. 수우의 부탁을 받은 노인화가 베르만은 억세게 비 바람이 부는 밤에 벽돌집 담벼락에 사다리를 대고는 등불을 켜들고 이미 떨어지고 없는 마지막 잎새 자리에 잎새 하나를 그려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험한 전날 밤을 지내고도 끄덕 없이 버티고 있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존시는 서서히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고 병세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노인화가 베르만은 담쟁이덩굴을 그려 넣기 위해 거의 이틀 동안 비를 맞으며 작업한 것 때문에 폐렴이 악화되어 급성폐렴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심한 폐렴 때문에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존시를 살리기 위해 차가운 비를 맞아가며 밤새도록 마지막 잎새를 그려주고 죽은 베르만의 희생은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죄에 결과에 대한 절망적인 인류에게 자신을 버려 구원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가난하고 버림받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서 회복과 평화와 삶의 진정한 희열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시대에 절대적 희망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희망의 끈 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을 맞이하면 희망의 잎새는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른가지가 살아 순을 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