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계절이 체감으로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 나는 이 나이에 무엇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조금은 답답하고 초라해지고 조급해집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엉엉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적인 이슈거리가 ‘이슬람국가(IS)’입니다. 이슬람국가가 파가 다르거나 자신들이 세운 법에 따르지 않는다고 수백명의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부인과 딸들을 끌어다가 노예로 팔아버리거나 죽였습니다. 그리고 무고한 이라크 북부지역 사람들을 고문하고 총살했습니다. 눈물의 땅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 전 대통령 후세인을 따랐던 무리들이 시리아남부지역과 이라크 북부지역을 거점으로 세운 국가입니다. 물론 국제사회는 이슬람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북부 지역의 행정과 경제중심지인 모술이라는 곳에서 얼마의 거리에 있는 매우 큰 모술 댐을 차지했습니다. 모술 댐은 성경에 등장한 3개의 유명한 강중에 하나인 유프라데스강과 쌍벽을 이루는 티그리스 강의 본류입니다. 모술 댐을 차지하면 모술지역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까지 5m 높이로 물바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댐을 이라크 정부와 반군인 이슬람국가가 서로 차지하려고 격전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알고 미국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이슬람국가 병사들을 공습해서 어렵게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술지역을 생각하면서 알렉산더 대왕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마케도냐 필리포스 왕의 아들로써 자기 아버지가 국가적인 큰 잔치에서 호위대장 파우사니아스의 칼에 찔려 47세에 죽자 20대 중반에 왕이 됩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호위대장이 당시 수백년동안 세계 최강의 강국인 페르시아 황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암살자 파우사니아스는 페르시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단순히 유명해지려고 국왕을 죽였다고 말했지만 그는 부친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눈물대신 “나는 그리스를 짓밟았던 페르시아보다 더 큰 제국을 이루겠다.”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대략 1700년 전에 알렉산더는 더 큰 제국을 이루기 위해 원정을 발표하고 페르시아를 변방에서부터 공격해나갔습니다. 그렇지만 변방 전쟁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에 페르시아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쟁이 지금의 모술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고가멜라 전쟁이었습니다.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더보다 5배의 큰 규모의 군대를 지니고 전쟁에 나섰지만 비참하게 패하고 수도인 바벨론도 점령당하고, 마침내 알렉산더는 세계 최고의 도시 페르세폴리스까지 초토화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승리함으로써 25살 나이에 세계를 정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는 그가 점령한 아름답고 대단한 곳은 자기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로 부르게 했습니다.
눈물대신 복수의 다짐을 한 알렉산더는 이뤄놓은 것은 참 많았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증명될 정도로 충분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알렉산더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다른 원정길에 나섰다가 여유가 생기자 병사들과 모레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넘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우는 알렉산더 대왕을 보고 대왕을 씨름으로 이긴 병사가 어찌 할 줄을 몰라 “대왕님 이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자. “아니다, 내가 너에게 져서 분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넘어진 이 자리를 보고 우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처럼 큰 나라를 가졌으며 권세와 부귀를 누리지만 나도 죽으면 어쩔 수 없이 이 모래 위에 넘어진 자국만큼 밖에 차지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인생이 너무 너무 헛것을 위해서 사는 것 같아서 우는 것이다.”라며 씨름에서 이긴 병사에게 말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좀 더 일찍 이 눈물을 흘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알렉산더 대왕은 그 후 6년 정도 더 살고 죽었습니다. 더 권세를 못얻어서 눈물을 흘립니까?, 더 많은 돈과 지식을 얻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더 많은 것들을 갖지 못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그 눈물은 부끄러운 눈물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나이와 이뤄놓는 일을 연관시키지 마십시오. 조급해집니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결국 주님의 시간표대로 움직입니다.
기분 좋은 눈물도 있습니다. 감사의 눈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진솔한 신앙고백의 눈물은 주님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감정의 카타르시스의 눈물도 아름답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눈물은 영혼의 카타르시스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자신이 흘리고 있는 눈물의 정체를 아시고 계십니까? 나 자신의 눈물로 빚어낸 영혼의 작품이나 결과들이 있습니까?
은혜받고 흘렀던 감사의 눈물이 다시 회복되도록 열정으로 기도해야 겠습니다^.^
허탄한것들에 조급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가꾸는일에,
주님의 마음을 품는 일에 애통한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