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고향
20세기 최고의 지성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해서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해답을 주며 죽음을 두려워 말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무신론자가 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믿을 필요 없다고 여기도록 만들었던 사람이며, 무신론을 강조하여 불신자들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고도 죽음을 얼마든지 품위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프랑스가 그토록 자랑하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입니다.
노년의 1980년 3월의 어느 날 사르트르는 청천벽력 같은 폐수종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은 메스컴이나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대철학자이니까 죽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무덤덤하게 인정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입원하는 한달동안 발악이란 발악은 다 했습니다.그는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어대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고 아내조차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아내가 되었습니다. 사실 사르트르처럼 글을 써서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죽음을 품위 있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보통사람보다 더 반항하고 행패부리는 모습에 병원측과 프랑스 정부가 당황하여 사르트르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모습들을 비밀로 통제를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기 마련입니다.1980년 4월 16일, 그는 입원한 지 한 달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음앞에 무기력했을까?’,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독자들의 반응은 “사르트르는 아마도 크리스챤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추석에 돌아갈 고향이 없어도, 고향에 갈 형편이 못되어도 꼭 돌아갈 고향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돌아갈 고향은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절 앞에 고향생각에 설렘은 잠시입니다. 영원한 설렘의 고향이 없으면 그 고향 가는 길목에서 고향이 없어서 지성인인 사르트르처럼 발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향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생각해봅니다
주님앞에 부족한 제 자신을 다시금 발견합니다
주님 앞에 부끄럼 없도록 내가 돌아갈 그곳을 더욱 마음에 두며
준비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제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곳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고향을 사모하듯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하루 하루 의미있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네요....
언제 가게 될지 모르기에 더 긴장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걸 자꾸
놓쳐버립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부르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고향갈 준비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