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평안한 삶을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하고 애를 쓰고 머리를 씁니다. 많은 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하기도 하고, 넉넉한 보장이 될 수 있는 보험을 들기도 하고, 최첨단 감시 장비와 보안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많은 비용를 들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개인 사설 경비용역직원들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평안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장성한 사람이 되었지만 겨울이 꽤 길다고 여겨졌던 때에 큰 아이는 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때에 태어났습니다.
시기적으로는 봄기운이 완연해야 되는데 날씨는 차가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봄비인지 눈인지 헛갈리게 하는 진눈개비가 종횡무진으로 내립니다. 우산이 별반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 엄마는 미끄러질까봐 조심하고, 아이 얼굴에 진눈개비가 들어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강보로 이리싸고 저리싸며 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아이는 생글 생글 잠들어 있습니다. 그저 엄마를 믿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걱정없이 평강으로 가득찬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믿으면 저렇게 되는 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한 것이라고는 엄마를 믿고 의지하는 것 그것 하나 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경찰이 아닌 개인 보안을 위해서 사용되는 보안시장이 음성양성으로 움직이는 비용이 2조원이 넘었다는 것이 업계의 통설입니다. 아마 보안비용은 갈수록 더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국민소득도, 보안을 기반으로 잘 지어진 집도 점점 늘어 가는데 보안에 들어간 비용은 늘어난다는 것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지불한 비용만큼 평안이 주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은
뜀걸음을 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뭔가를 더 가진 것만큼, 더 올라간 만큼 더 불안 해 합니다. 육신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불안 해 하고 있습니다.
불안을 가져다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경제상황이 안 좋은 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많이 배우지 못해서 일까요? 사실 무서운 대상은 사람입니다. 불안한 원인이 돈 문제로 알고 돈으로 접근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좀 더 배우면 나아질 것이라며 모든 것이 배움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심지어는 동사무소의 빈 공간뿐만 아니라 백화점까지도 평생교육기관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증후군은 더해가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갓난아이만큼도 믿고 자신을 맡길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믿고 의지하지만 먼 훗날 성장해서 보면 사실 엄마는 참으로 의지할 만큼 강한 존재는 아닙니다. 그저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성장하면 부모를 전처럼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갓난아이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가 엄마이듯 인간이 밑고 맡길 수 있는 존재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생각으로만 믿는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생각으로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갓난아이가 다른 사람이 품어주면 못 믿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면서 깊이 잠들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삶으로 그분이 우리의 머리되심을 고백할 때 어린아이처럼 그분을 믿고 맡겨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그럴싸한 외적 모양새로 판단하지 말고 나 자신을 얼마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가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맡기면 주님은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십니다. 출세와 대단한 명성가지고 얼마의 사람들은 움직일 수 있겠지만 주님은 움직이시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출세는 내게 유일한 평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인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끝까지 순수하게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지켜 갈 때 불안의 계곡은 평화의 노래가 흘러넘치고 , 산지가 평지가 되고, 불행이 변하여 주님이 주시는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주님을 의지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불안증후군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