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어제는 못처럼 성도님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습니다. 여러 가지 교회행사로 인해 간담회가 미뤄졌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끝마치려고 평일 중에 가능한 날을 정한 것이 수요일이었습니다. 포천 신북면으로 갔다가 광릉수목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중간 중간 부서별 간담회를 동시에 진행을 했습니다. 창밖에 펼쳐진 병풍 같은 산의 모습은 수없이 가까이 왔다가 또 멀리 사라집니다. 진풍경은 생기발랄하게 솟아나는 연두 잎으로 뒤 덥혀가는 아름다운 산들이었습니다. 넉넉한 점심과 싱그러운 이파리들의 춤사위는 조화 그 자체였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수목원 방문은 또 다른 마음에 볼거리를 더해주었습니다. 제 앞서가는 늘그막한 부부가 구름다리 위를 건너면서 "우리도 이 정도면 넉넉하게 산 것 같아요, 이제는 무슨 한이 있겠어요, 그저 만족합니다."라고 말한 대화를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칸트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80세 때에 죽으면서 "아, 이제 이 정도 살았으면 됐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인생을 멋지게 살았습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칸트는 40년 넘도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성실하기로 소문났습니다. 그저 자기 안방과 서재 그리고 강의실만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가 다니는 길목에 사는 사람들은 굳이 시계를 볼 필요가 없었답니다. 그는 틀림없이 그 시간이 되면 학교로 갔다가 정확한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성실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를 걸어 다니는 시계라고 불렀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기계적인 사람 같다 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인정 없는 사람이거나 지극히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감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변사람들을 돕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자기를 통해서 주변이 잘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가족 대하듯이 대했습니다. 그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대작들을 집필했습니다. 상대방이 잘되기를 원해서 도와주는 그 마음과 가치는 위대한 작품을 이루는데 기초이론이 되었습니다. 돕고 사는 것은 성경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먼저 도와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돕는 삶이 없으면서 인생의 삶을 말한다는 것은 앞뒤가 일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돕는 것은 인생을 실제적으로 정의를 내려주게 합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어두워 고통당하는 곳에 빛으로 다가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도움을 통해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썩을지도 모를 곳에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소금이 되어지면 그곳은 더 많은 유익이 모두를 위해 생겨납니다. 빛과 소금되는 도움의 삶은
인생의 마지막에 " 이 정도면 넉넉하게 산 것 같아요, 이제는 무슨 한이 있겠어요, 그저 만족합니다. 잠시 후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안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것이 없을 듯 하네요..
그런 삶이 되도록 돕는 사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