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좋은 세상
좋은 세상
좋은 세상을 다들 꿈꿉니다. 세상이 너무 악하고 불평등하니까 나 자신만이라도 불의와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도전하지만 또 지졌다며 회의감에 빠집니다. 주변을 살펴보면서 세상이 악하고 부당 하다고 경험을 더하면 대부분은 옳은 것을 위한 싸움을 포기하고 자기 가정에서나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소극적으로 빠져듭니다.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모든 생활들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갖추어진 문명들을 말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통수단인 도로나 부대시설이 잘되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할 수 있고, 편리하게 생활 할 수 있으면 아주 좋은 세상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선진국처럼 문명의 이기들이 발달한 나라들 순으로 좋은 나라 순서가 정해집니다. 이런 분류에 속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도 최신식 기계 종류나 편리한 도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세상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편리한 도구가 많고 생활할 수 있는 수단들이 많이 발달하면 좋은 세상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큰 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은 그런 편리를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이 되기 쉽고, 그것을 얻기 위한 경쟁만 생길 뿐이지 사람들의 인성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좋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문명의 이기만 갖게 된다면 좋은 세상이 아니라 최악의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좋은 세상은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가 통하는 세상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좋은 세상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직하며 옳으며 인간의 존엄성이 최고의 가치로 두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거짓을 가장 증오하고 무서워합니다. 철학자로 유명한 임마누엘 칸트는 태어난 곳은 독일이지만 부모들은 폴란드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임마누엘 칸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많습니다. 어느 날 칸트의 아버지가 고향인 폴란드를 말을 타고 갔습니다. 으슥한 숲 속 길을 통과하다가 갑자기 산적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얼빠진 채 있으니까 강도들이 “가진 것이 전부 이거뿐이냐?”라고 묻자 “아예 그것이 전부입니다.”대답하고 말도 빼앗기고 걸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 참가다 정신 들어와 보니 앞가슴 쪽이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안쪽 천으로 주머니를 만들고 넣어둔 금덩어리였습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는 바로 강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여기 좀 보시오! 내가 아까는 너무 무서워 내 정신이 아니어서 내 옷 속에 감춰둔 금덩이를 생각 못해서 더 이상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가져가시오.”하면서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강도들은 누구도 금덩어리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강도는 빼앗아 갔던 지갑을 다시 던져주기까지 했습니다. 진실은 산적들도 손들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정직함은 어느 누구든지 감동시키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은 정직함과 진실함을 좇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좋은 세상은 정직함이 춤추는 곳입니다. 좋은 세상, 좋은 가정은 먹을 많고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직으로 세워진 가정과 공동체가 존재할 때입니다. 정직의 효과는 불의보다 약간 늦게 나타나지만 불의를 영원히 이기는 도구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실력이 정직입니다.

김은정
작성일
김은정님의 댓글

이선용
작성일
이선용님의 댓글

김경숙
작성일
김경숙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