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무슨 맛에 사십니까?
무슨 맛에 사십니까?
문제를 만나면 문제를 풀지 않고 문제를 핑계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누가 풀어줍니까? 문제 앞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를 보고 문제 앞으로 돌아오면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핑계 삼아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행을 마치면 곧바로 문제로 돌아와야 하는데 문제 있는 곳이 전보다 더 싫어질 뿐만 아니라 문제에 집중하는 것 대신 제 3의 여행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버려둔 문제는 사소한 꿀물에도 쉽게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근원적인 문제를 볼 수 없게 만들어버린 원인을 제공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내가 마주하는 내 자신의 문제로부터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고난에서 지혜를 얻고 지혜로 행동하고 생활로 소화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이유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유명한 비유 중에 하나인 톨스토이 작품 인생론에 대해서 말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고 걷다가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갈 길은 바쁜데 그 와중에 커다란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며 잡아먹을 듯 달려들자 정신을 잃고 뛰어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몇 바뀌 떨어지다가 칡넝쿨에 한 팔이 걸려서 바닥에 추락하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칡넝쿨이 여기 저기 늘어져 있어 그 중에 괜찮은 줄을 붙잡고 발을 딛으려 하니 딛딘 곳마다 힘을 세게 주면 부스러집니다. 위쪽을 향해서 조금씩 올라가는데 위에서는 여전히 호랑이가 버티고 있습니다. 천길 아래로 보이는 곳은 독사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쪽으로 향하지만 이제는 힘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위쪽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올려보니 수없는 구멍에 들쥐들이 들락거리면서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절벽 바위 틈새는 벌들이 집을 짓고 꿀을 저장해놓은 것이 넘쳐 머리 위로 한 두 방울씩 떨어집니다. 뺨을 타고 내려오는 꿀을 혀를 내밀고 끌어다가 먹으니 힘이 나고 정신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몸을 돌려서 정확하게 꿀을 받아먹을 수 있도록 자세를 바꿨습니다. 옆에 있는 칡넝쿨을 끌어다가 엉덩이를 받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신 꿀을 받아먹었습니다. 저 아래 우굴 거리는 뱀이 넘쳐나도 내가 붙잡고 있는 내 생명줄인 칡넝쿨을 들쥐가 갉아먹어도 단맛에 취해 잠시 후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곳에 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인생의 갈길은 그렇게 넉넉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세상이 주는 꿀맛에 영혼을 맡겨놓았습니까? 믿음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쥐들의 소리가 아침 이슬처럼 잠깐 있다가 없어질 세상 단맛 때문에 들리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영적인 각성을 해서 깨어 있어야 할 때라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하루에 한번정도는
"지금 내가 무슨 단맛에 취해 사는가? "를 질문해 보십시오.

김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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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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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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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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