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핑계는 신실함을 두려워합니다.
핑계를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생겼을 때 원인을 자신에게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여긴 사람들이 있고 환경을 구실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늘 상대방에게 원인이 있다고 여긴 경우는 어떤 사람과 사귐을 가져도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지낼 것인데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 자기 스스로 떠나거나 그만둡니다. 때론 환경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시키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이나 인간관계도 이런 방법으로 책임을 떠넘긴다면 온전한 신앙생활이나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항상 신실함을 유지해야 함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도 신실함이 없으면 핵심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신실함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이 성숙해야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실함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고백이며 인격을 걸고 하는 삶의 방향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한 피상적인 관계는 상황이 변하면 얼마든지 변질되거나 바꿀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변함없는 주님과의 만남은 최후에 신실함으로 보상받습니다. 그리스로마전화에 나오는 오딧세이(율리시스)가 사라진지 10년쯤이 지나자 그의 부인 페네로페는 귀찮을 정도로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자기 남편 율리시스가 썼던 활을 사용하여 12개의 고리를 꿰뚫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마침 율리시스도 가까스로 페네로페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지만 자기부인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율리시스도 활쏘기 경주에 나서서 자기를 입증해보이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둘씩 많은 청혼자들이 활쏘기를 하지만 활 자체가 워낙 무거워 제대로 가늠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마지막 거지같은 복장으로 등장한 율리시스는 주변에 자신을 무시하는 눈길에 대해 “비록 지금은 거지지만 나도 한때는 힘 있는 군인이었소 늙었지만 아직도 힘은 좀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해보겠소.”라고 말하자 많은 청혼자들이 별꼴이 다 있다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러자 페네로페는 진지하게 나서는 율리시스를 보고 활 쏘는 것을 시도해보라고 허락을 해줍니다. 율리시스는 힘들이지 않고 활을 당긴 다음 정확하게 조준하고 활을 놓자 12개의 고리를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아, 이 사람이 율리시스다.”라며 뛰쳐나가 율리시스의 양팔에 안겼습니다. 이 거지가 페네로페가 그렇게 기다렸던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주님과 사귀십시오. 그러면 환경이 넘보지 못합니다. 신실함 앞에서는 핑계는 도망칩니다. 핑계는 신실함을 두려워합니다. 신앙은 신실함을 먹고 성장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외모가 바뀌어도 믿는 내용은 똑같아야 합니다. 주님이 해주시는 기적적인 일을 통해서만 그분을 알려고 하지 말고 환경을 뛰어넘어 날마다 주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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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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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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