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삶의 윤활유
삶의 윤활유
신실할 때에 신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실한 삶의 자세는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초입니다.
받은 은혜와 받은 축복들을 얼마나 기억하십니까? 누린 은사들과 얻었던 소유와 건강을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안타깝고 아쉽게 여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진 많은 은혜와 축복들을 계속해서 유지 않고 지낸 다는 사실입니다. 지극히 당연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받은 은혜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자체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념비를 눈에 잘 보인 곳에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만큼 잘 잊어버리는 것이 자신이 받았던 은혜요 축복들입니다. 옛적에 전해지는 말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만큼 잘 잊고 산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모습들을 보면 원수는 돌에 새겨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은혜 받은 것들은 물에 새겨 놓고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고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 큰 불안과 전쟁 속에서 구하는 것은 평화를 주옵소서일 것입니다. 평화로운 안식처, 사회, 공동체, 민족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입니다. 수 없는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을 것이고, 수없는 갈망을 품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역사들을 잊어버렸습니다. 몇 년 동안을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던 분이 15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친지들이며 이웃들은 모여 축하하며 잔치를 했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이 아이만 보아도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겼고 일하는 재미도 생겼습니다. 밖에 있다가도 아이가 보고 싶으면 열일을 제처 놓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이제는 아이 보는 재미에 수요일도 금요일도 점점 뜸해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주일 오전에 오는 것도 이것저것 아이 핑계로 나오지 않는 경우들이 많아졌습니다. 아이가 대공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특히 동물들을 보는 것을 즐겨한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자란 아이는 코끼리 보는 것이 좋은지 대공원가고 싶으면 자기 코에 손을 대는 것으로 표시를 한답니다. 그러면 또 대공원에 동물들 보여주려고 갑니다. 아이는 교회 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동물원에 가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똑같은 장소를 틈만 나면 가는데도 이 부부는 싫증나지 않는다는 신기함입니다.
교회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또 가야 되는 거냐? 라고 따지듯이 반응하지만 대공원 가는 것은 신이 납니다. 아이가 모든 결정을 짓는데 핵심이 되었고 이 아이에게 기분을 맞추는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이 낳게 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은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나 선물하는 계절에 인사치례로 몇 푼 헌금 통에 던져 넣어주면 할 도리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잘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축복이나 은혜들을 잘 기억하며 은혜 받는 자세를 놓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새해는 앞으로 있을 것만 챙기지 마시고 은혜의 줄을 다시 찾는 데 힘을 쏟아야 될 것입니다. 새로운 기계가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윤활유를 칠해준 것이 부드럽습니다. 가정이라는 기계도, 공동체라는 기계도, 내 영혼이라는 기계도 윤활유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은혜를 간직하며 성실을 다해 주님께 순종하는 신실함은 삶을 가장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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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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