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시대는 바뀌나
새해를 맞이하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염려를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이 기대한 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반면에 염려나 근심거리가 있으면 그 걱정거리가 언제나 끝날 것인지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이런 염려와 기대에 대한 궁금함을 풀어줄 수 있는 도구로 여기는 것이 주역이나 점술 같은 것들 입니다. 물론 믿는 자들은 우주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그분께 맡깁니다. "너희가 삶을 계획할지라도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토정비결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평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찾아가는 곳이 무속인, 운명철학관, 점집 같은 곳들 입니다. 특별히 설 명절을 전후해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집 같은 곳에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에 점집이나 무속인과 운명철학관에 가는 사람들이 획기적으로 줄었을 뿐만 아니라 점집 자체가 매년 200개소 이상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무속인들 역시 매년 100명이상이 그만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변화가 온 것은 7~8년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인터넷 등을 통하여 그날의 운수나 토정비결 등을 볼 수 있는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없고 점집에 가기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접근성이 뛰어나다보니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더욱이 비용부담이 점집의 1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이용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더 획기적으로 바뀐 이유 중에 하나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오프라인 점집이 온라인 점집으로 그리고 손안으로 철학관이 옮겨진데 있습니다. 거기에 카카오톡이 활성화되면서 기존에 있던 인터넷 사주 및 운세를 제공하던 단체들이 모바일 앱을 통해서 다양한 연령대를 고객으로 삼고 무료운세, 별자리, 혈액형, 띠별 운세, 심리테스트 등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새로운 도구들이 정통적으로 수백 년씩 존재했던 의식이나 습관 및 가치관을 바꿔 놓아버립니다. 이런 소통 기술이 그 시대에 맞게 출현하고 없어지고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고 사멸시키고를 하면서 역사가 진행되지만 영원히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똑같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화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우리를 향한 큰 사랑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은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동일하신 주님은 시대의 변화를 초월하시고 공간을 초월하셔서 주관하십니다. 인간들의 문화가 하나님의 뜻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이 변화시키려고 했던 시도마다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만든 종교는 인간들이 얼마든지 그 가치를 시대에 따라 바꾸어놓기도 하고 문화에 편승해서 발전도 합니다. 기독교는 문화나 정신이나 가치가 아니라 생명이요 호흡입니다.
밥과 마시는 물은 얼마든지 바꿔먹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고 별 차이도 없지만 호흡은 몇 초에 한 번씩 하다가 1시간이나 2시간에 한 번씩 숨 쉬는 것으로 바꿔놓을 수가 없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아니고 생명이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어도 진정한 신앙은 바뀌어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생활하면서 시대나 문화타령하십니까? 주님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만날수록 믿음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창에 시대의 문화라는 구름과 스모그가 끼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제는 눈을 떠서 몇 겹으로 스모그가 끼었던 자신의 마음의 창을 청소하고 믿음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때입니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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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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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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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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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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