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야성과 권위
세상 만물들이 각자 본질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토끼와 호랑이가 서로 다른 성품을 갖고 있듯이 각기 다른 고유의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토끼와 호랑이의 차이는 단순히 등치만의 차이를 가지고 다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의 본능적인 성품 때문입니다. 각자 지니고 있는 본능적인 성품을 야성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야성은 신앙생활에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믿는 자들은 믿는 자의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믿는 자의 본성을 잃어버리면 호랑이는 토끼만도 못하게 되며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바로 믿는 자는 믿는 자의 야성을 지녀야 흔들림 없이 든든히 서갈 수가 있습니다.
이솝우화를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자하나가 어느 동네 길을 걸어가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처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처녀의 아버지인 농부를 찾아가 "나는 당신 딸을 사랑하니 결혼을 하겠소, 만약 싫다면 당신 딸을 잡아먹고 말겠소. 갑자기 사자의 청혼을 받은 처녀의 아버지는 앞이 캄캄할 정도로 무서워 거절도 못하고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사정사정 해서 사자를 돌려보냈습니다. 도무지 걱정 때문에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걱정 말라며 “아버지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 있으니 이렇게 하시면 될 것입니다.”라고 안심시켜줍니다. 드디어 사자가 아침 일찍 찾아와 결정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 아버지는 반갑게 사자를 대합니다." 내 딸도 당신처럼 성실하고 용감한 사자라면 결혼하고 싶다고 그럽니다. 다만 한 가지 딸이 소원이 있답니다.“ 라고 말하자 너무 기분이 좋아진 사자가 침을 삼키며 묻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내 딸이 사자님을 사랑해도 사자님의 날카로운 발톱이 무서워 가까이 갈수 없으니 그 발톱을 뽑아주면 시집을 가겠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뭐,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라며 농부의 딸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긴 사자는 자기의 발톱을 모조리 뽑고는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추켜세우며 말합니다. "내 딸은 사자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답니다. 그것만 해결해주시면 기꺼이 시집을 간답니다."
"오 그래? 그 부탁이 뭡니까?" "실은 내 딸이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이빨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가 없답니다."
"그렇게 하고 내일 다시 오겠소"
내일 오겠다며 사자는 이미 발톱이 빠져서 뒤뚱거리며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다시 왔습니다. "내 당신 말대로 이빨도 다 뽑았소, 자 이제 당신 딸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자 농부는 갑자기 몽둥이를 들더니 "네 이놈, 지금까지는 네 발톱과 이빨이 무서워 꼼짝 못했지만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 하며 사자를 죽도록 두들겨 팼습니다. 숨을 헐떡이는 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발톱도, 이빨도 다 뽑아버린 뒤였습니다. 자신의 야성을 뽑아낸 것입니다. 야성이 없는데 누가 능력 있는 호랑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누구나 밟으려고 합니다. 당장 눈앞에 놓여 진 것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소중한 본질적인사명도, 믿는 자의 본능적인 야성인 기도와 뜨거운 열정도, 예수님만 바라보겠다는 굳은 결심도 다 빼내 세상에 던져 주어버리고 사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본질적인 것을 내주고 대신 세상 것을 얻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다 빼줄 정도로 좋아서 얻으려고 했던 세상 것을 얻기는커녕 자신의 생명마저 위험에 빠지고 맙니다.
믿음이라는 이빨이 빠진 채 무엇을 움켜쥘 수 있을까요? 기도의 발톱이 뽑히고 기우뚱 거리는 믿음의 행보는 얼마나 세상에 우스갯거리가 되겠습니까? 좋아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바라봐야 할 것들은 차원이 높습니다. 야성 있는 자만이 권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야성을 지닐 때 짐승의 왕이라는 권위를 얻고, 믿는 자들은 믿음의 본질을 지닐 때 영적인 권위를 얻게 됩니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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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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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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