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각자 다릅니다.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각자 다릅니다.
어릴 적부터 먹는 것에 애착을 가졌는데 늘 부족하다고 여긴 사람은 성장해서도 먹는 것에
가치를 제일 많이 두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부터 구하고 먹는 것 위주로
준비하고 먹을 것을 제일 많이 투자합니다. 그리고 잘 먹었으면 제일 잘 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도 먹는 것을 많이 해주면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실 것에 마음을 두었던 사람은 마실 것을 위해 돈도 준비하고 마셨던 것들을 자랑하고, 마실 것을 대접한 것이 최고의 것을 해준 것이라고 여기며 상대방을 위한 배려도 “다음에 한 잔 살게 ”라는 말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마실 것에 대한 소비는 일종에 투자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집에 대한 아쉬움을 가졌던 사람들은 수 십 년 동안 애쓰고 수고해서 집 장만하고 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이러다보니 집을 자랑스러워하고 집 자체에 비중을 둡니다. 가족이 해체위기에 처해도 오직 그 집을 지키는데 힘을 쓰고 집을 가꾸는데 신경을 쓰지 가족을 지키고 가족을 가꾸는데 집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잃어도 집만은 지키려는 의식이 강합니다.
입는 것에 비교의식이 강했던 사람은 돈을 갖게 되면 옷부터 눈에 띄게 되어있습니다. 형편이 안 되면 할부로 사 입습니다. 자녀가 어쩌다 낡은 옷을 입으면 그 꼴을 볼 수가 없습니다. 남들의 자녀들이 입었던 아주 성한 옷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존심도 상해합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내용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인 어떤 특정한 가치관에 의해서 왜곡된 의식으로 포위당한 부자유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가시적인 것 과 불가시적인 것들에 지배당해 삶의 의식에서 포로가 되어 눌려 사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사회에서 자기 영역확보를 웬만큼 해놓고 산다고 할지라도 이처럼 자기에게 스스로 묶여 사는 것입니다. 전에 지배받았던 마음의 의식에 의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지배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옛 자기에게서 자유 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에게 스스로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족하는 자가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족한 자가 모든 겉으로 나타난 행복한 보다 더 자유 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삶 속에서 뭘 추구해야 되는지를 빨리 결정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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