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애지중지 여긴 거위
애지중지여긴 거위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뭔가 발전 되어가는 것은 소망이기도 합니다. 엊그제는 동해 해변을 살펴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성에서부터 동해시까지 해변도시와 항 포구를 둘러봤습니다. 옛 추억들이 묻어 있는 곳들을 들렀는데 대부분은 어둡고 불황이라는 늪에 빠진 듯이 고단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가을바람과 함께 스산함과 황량함이 몰아치니 폐업된 업소들은 더욱 측은해 보였습니다. 과거에 대단한 인파가 끊이지 않고 불야성을 이뤘던 곳들은 인적이 끊긴 쇠락한 성 같아보였고, 크나큰 건물들은 자기 본래의 이름대신 폐업이라는 푯말이 걸려있어 무엇보다 잘나가기에 황금알을 낳아주던 거위같이 애지중지 여겼던 것이 이제는 애물단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군데 잘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불황이라고 아우성치고,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고 시름에 겨워하는 가운데서 유독 잘되어 신바람 나는 곳을 보면서 “무슨 불경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여긴 참 잘되네!”라고 중얼거림이 나옵니다. 그 세 곳은 누가 봐도 또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마음을 끄는 친절한 종업원들, 세련되고 잘 훈련된 서비스, 끊임없이 연구하여 새롭게 단장하는 혁신, 고객을 제일로 생각하고 섬긴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산업사회든, 무엇이든 자기 혁신을 이루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래는 지금 있는 것이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시간의 혁신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혁신하려는 몸부림이 없으면 지금 황금알을 낳아주고 있는 것들은 어느 한순간에 자신의 발목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올무가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나아지기 위한 혁신을 위한 몸부림 없이는 우리 영과 육은 쇠락에 빠지고 맙니다.
지금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미래에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가 되지 않도록 당장 혁신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미래를 읽어내고 준비해 낼 줄 아는 눈입니다. 즉 예지의 눈이 되겠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혁신은 다름 아닌 영적인 각성에 있습니다. 영적인 자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버거운 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각성이 이뤄지면 그 안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과 기쁨과 삶의 능력이 넘치게 됩니다. 지금 물질이 최고라며 붙잡고서 인생의 기쁨을 주는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갑자기 내가 섬기던 물질만능주의 신은 인생의 무게를 덜어달라는 자신의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름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애지중지 여겨 혁신하지 않던 황금알 낳는 거위는 당신을 가둬놓는 덫이 되고 맙니다.
미래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담아두고 싶다면 지금 혁신하십시오. 영적인 각성을 시작하십시오. 영적으로 깨어나야 되겠고 시대정신을 이끌 수 있는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깬 사람이 필요합니다. 거목은 많습니다. 그러나 썩지 않은 나무가 필요합니다. 교회 다닌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혁신은 단순히 교회 다니는 작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작업입니다.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지금 영적으로, 세상 적으로 혁신인 영적인 자각을 시작하십시오. 영적인 각성이 주어질 때 혁신과 예지의 눈을 뜨게 됩니다.

이혜경
작성일
이혜경님의 댓글

김은정
작성일
김은정님의 댓글

이선용
작성일
이선용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