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람은 조직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이루는 조직을 말합니다.
건강한 조직은 공동체가 충성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충성은 단순히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자가 명령한 것이라서 따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충성은 사랑과 중심을 삶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족도 국가도 이런 충성이 모아질 때에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시도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충성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충성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와 은혜가 넘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세상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런 삶 속에서는 엄청난 모순을 만들어낼 뿐 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가져서는 안 될 이중성의 싹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습니다.
단지 말로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다면 그 신앙은 주님이 전부여야 합니다. 그분과 연합해서 이뤄지는 조직은 충성공동체라는 사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돗개는 명성 있는 존재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 LA경찰국에서 진돗개를 미국경찰견으로 쓰려고 테스트를 1년 가까이 했습니다. 3마리 중에 1마리가 남았는데 그 진돗개마저 탈락이 되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진돗개가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진돗개는 절대로 자기가 충성했던 주인을 스스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개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기 주인에게만 충성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다른 개들보다 탁월함이 증명되었음에도 탈락되었습니다. 진돗개는 자기가 충성했던 그 옛 주인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주인에게 그처럼 충성을 다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전처럼 잘 따르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물질과 권력 앞에 우리 충성을 수시로 바꿔버리는 가변적인 충성심은 진돗개가 자기 주인에게 향한 충성심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과 연합해서 산다고 하지만 예배하며 기도하며 지내는 교회 안에서의 주인은 교회 생활용 주인이고 교회 문을 열고 나가서는 그 필요성에 따라서 세워두는 주인이 다른 경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 자신이 믿는 주님을 내 영혼의 주인으로 모셨다면 변함없는 충성을 가진 것은 믿음이 성장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던 그 뜨거운 마음의 고백이 여전히 당신 속에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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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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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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