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천사보다 사람을 찿습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살펴보면 예전과 달리 도로와 철로로 가득 찬 느낌이 들 정도로 길이 많습니다. 이제는 하루 생활권이 아니라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해졌습니다. 여기 저기 길들이 시원스럽게 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공중에는 여러 개의 국내 항공사들이 생겨 하늘을 이용한 항공망도 많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오는 것도 철길을 따라 올라오듯 그렇게 정해진 것 말고도 도로를 이용한 길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서울을 잘 올라갈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길은 “수없이 많이 있으니 알아서 편안한 길로 가십시오.”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가는 진리도 서울 가는 길처럼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어떤 부분까지는 맞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죽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그것은 내가 알바 아니라서, 죽은 다음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데 굳이 관심가질 필요가 있느냐?”라며 상관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립니다. 죽은 다음에는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럴싸한 논리나 신념이 아니라 진지 자체이신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어떤 분이 부동산중개소에서 계약서를 쓰는데 계약서를 계속 거꾸로 들고 있습니다. 그분에게 “지금이라도 한글을 배우십시오.” 라고 말하면 “배워서 뭐 하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누가 그분에게 지혜롭다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알아야 되고 배워야 됩니다. 당신이 지금 무관심해도 그날은 다가오고 있고 갈림길의 심판의 시간도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누구도 변명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습니다. 길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빼놓고는 없다고 분명히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상식과 이론을 다동원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석해내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진리는 말씀대로 진행됩니다. 삶과 영혼의 진리를 사회과학적 논리로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다 라는 식으로 길의 다양성을 주장한다면 본질을 잘 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진리는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는 자기를 변호하는데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길가에서는 참 된 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진리는 예수님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만 참된 진리를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참된 진리를 알기는 무척이나 쉽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격의 수준과 지식의 수준과 관계없이 내 심령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삼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고행하고, 실행하고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왕 되었던 자신을 확실히 내려놓고, 비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일은 자신이 결단하고 해야 될 몫입니다. ‘팡세’라는 유명한 책을 집필했던 파스칼은 철학가이면서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에 은혜 받고서 주변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이 ‘팡세’를 썼습니다. 그가 강조한 몇 가지 내용 중에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정리하기를 생각이 없는 과학자, 생각이 없는 철학자, 생각이 없는 예술가, 생각이 없는 정치가는 심각한 문제를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의 열심은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진리를 계속 생각하는 사람은 위대한 것을 표출해낸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 중에 마호메트와 인간의 불행에 대해 “마호메트가 한 일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에 불과합니다. 그는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고 예언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도 못하는 일을 해냈습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며 짐승도 아니면서 천사를 닮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짐승을 닮아가는 데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는 사람은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됩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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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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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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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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