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살인도구
태풍 산바가 한바탕 난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예상 할 수 없는 태풍이 4개씩이나 불어 닥쳐 온 것은 50년 만의 처음이랍니다. 많은 농민과 어민들이 재해를 당했고 감당할 수 없는 수해를 입은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은 것도 자연의 이치입니다. 자연 앞에 인간은 참으로 미약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아예 자연을 엄마의 품으로 여기고 그 안에 안겨 사는 모습을 취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자연그대로 존재하게 하고 자연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 재해들은 자연을 파괴하는데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자연을 지키는 것은 별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아주 조금만 변형시켜도 그것을 복구하는 데는 몇 백배의 시간과 몇 배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 자연보호주의 자들의 주장입니다.
인간의 마음도 욕심이라는 것이 들어와서 자아를 파괴하면 그 고장 난 마음을 고치는데 평생을 쏟아 부어도 못 고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욕심이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도록 놓아두면 순식간에 자신의 모든 인격이 욕심으로부터 지배받게 됩니다. 욕심은 자신만을 옹호하고 자신만을 섬기고 자신의 세계만을 보게 합니다. 욕심은 자가 성숙이 되고 성숙되면 또 다른 욕심과 만나서 결혼하게 되고 그 자녀를 낳게 되는데 그 자녀의 이름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 죄라는 아이가 커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이루며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도달되도록 해서 존경도 받게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더 빨리 사망에 이르게 만듭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산사태를 만나기전에 나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의 뿌리인 욕심의 태풍이 휩쓸고 가지 못하도록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어느 미니버스 운전기사의 살신성인정신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습니다. 전남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 앞 언덕길에 주차해두었던 자신의 차가 학교가 끝나서 많은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굴려내려오는 것을 보자 학생들보고 피하라는 소리를 지르고 운전기사가 뛰어들어 버스를 막아서서 학생들은 무사했지만 운전기사는 죽고 말았습니다. 나부터 살고보자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참 멋진 마음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더 훈훈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쁜지 전국에서 위로와 유가족을 향한 성금기탁이 줄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학교에서도 그 마음이 고마워서 대대적인 장례위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욕심을 버릴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십니다. 진정한 믿음은 욕심으로 물든 마음을 고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죄를 낳고 그다음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살인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왜 자신도 남도 죽이는 이 무서운 살인도구를 지니고 다녀야 합니까?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라고요. 욕심을 지니고서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욕심은 칼이나 총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더 위험합니다. 사랑은 욕심이 없는데서 싹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랑과 욕심은 같은 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욕심은 죽습니다. 또한 욕심이 생기면 사랑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욕심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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