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산은 푸르지만
울창한 뒷산 북한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아침녘에 바라보면 싱그러움 자체가
뿜어 나오는 듯합니다. 요즘은 녹음이 짙어집니다. 울창한 푸르름은 사랑 많은 어머니가 지친 자녀를 껴안아 주며 가슴으로 보듬아 주어 위로 받고 용기를 얻듯이 우리 마을을 그렇게 보듬고 있습니다. 요 며칠 여의도 근처를 왔다갔다 하면서 느낀 것은 여의도 집을 못살겠다. 삭막하고 숨 너머 갈 것 같은 뿌연 대기 상태를 보면서 어서 빨리 북한산 자락 푸르른 수유동으로 가자며 재촉합니다.
도로교통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싱그러움이 있는 수유동으로 돌아간다는 것 때문에 별로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사랑받으며 오랜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던 참나무들이 시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참나무시들음병'이라고 합니다. 광릉긴나무좀이 매개체가 되어 참나무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라펠리아 병원균을 퍼트려 감염시켜서 줄기의 수분을 운반해주는 통로를 막아 서서히 말라 죽게 합니다.
서울시산림조합에서 여러 가지로 방제작업을 하지만 별반 효과가 없는 듯합니다. 그러자 얼마 전부터는 병든 참나무들을 무차별적으로 벌목해서 비닐로 덮어 훈증방제를 했지만 이것 역시 큰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들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참나무들 서서히 시들어 말라버리게 하는 '참나무시들음병'의 주범인 벌레를 잡기위해 노란색 테이프를 나무 밑 둥에서부터 성인 남자 키만 한 정도 높이까지 감아놓았습니다. 노란테이프에는 파리 잡는 것과 같은 '끈끈이'이가 표면에 붙어있는데 벌레가 왔다가 거기에 붙어서 죽게 하는 원리인 것입니다.
유심히 보니까 어떤 나무는 많은 벌레들이 끈끈이에 붙어서 죽어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한마리가 날아와서는 끈끈이에 자기 몸이 붙자 쉬지 않고 왕성하게 탈출을
시도하면서 갖은 머리를 다 쓰는 듯 몇 개의 다리 중에서 하나만 붙여놓고 나머지는 떼어낸 다음 힘을 일시 모아 날아가야겠다는 의도인 듯 힘찬 날개 짓을 해댑니다. 그러나 그 노력도 붙어있는 다리 하나를 떼어내지 못하고 지쳐서 뒤로 곤두박질 처진 채 자기 몸길이만큼 아래쪽으로 등 쪽이 들러붙어서 거꾸로 매달려 있게 됩니다. 한참 후 나름 남은 힘이 있는지 다시 붙은 등 쪽을 떼어내려는 듯 더듬이와 모든 다리들이 허공을 향하여 발짓을 해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듬이까지 붙어 버렸습니다. 주변에 수많은 동료들이 그렇게 죽어갔는데도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벌레의 살겠다는 몸부림으로는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그 넓은 끈끈이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죽은 시체들이 보여주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만약에 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면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는데 요청 할 줄은 모르고 자신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엉뚱한 확신으로 버팁니다. 또한 의지를 갖고서 몸부림치다보면 해답이 반드시 나올 것처럼 믿고서 노력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몸부림치다 지쳐서 죽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죄와 욕심이라는 넓고 높은 끈끈이에 붙잡혀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끈끈이 덧에 걸려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을 멈추는 것이 인간에게 쉼이 아닙니다. 끈끈이 덧에서 나왔을 때에야 진정으로 쉼과 누림이 주어지게 됩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며 그분의 뜻대로 살면 끈끈이 덧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은 푸르지만 사실은 시들어갑니다. 푸른 삶을 꿈꾸지만 영혼은 꽃꽂이 꽃처럼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삶도 영혼도 주님안에서 푸르러가십시오.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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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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