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귀찮지만 힘이 됩니다.
요즘 날씨는 일교차가 크면서도 한 낮에는 거의 섭씨 30도를 육박할 정도입니다. 길가 주변에는 있는 나무들 가지들도 더위에 지친 듯이 풀 없이 축 늘어져있습니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파리를 지탱하는 것 조차 버거워보였습니다. 그래도 버티고 있는 것은 부담되는 그 이파리들이 탄소동화작용을 해서 자신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진 잎들이 뭐가 유익이 되고 볼품이 있겠느냐고 볼멘소리만 한다면 생명의 원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오가 넘어 교회에서 기도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100m쯤 앞서가시던 어르신 한분이 길가 건물처마가 햇빛을 차단해주는 좁디좁은 그늘에 의지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들고 가시다가 힘이 부치신지 옮겨 옆구리에 물건을 끼고 쉬엄쉬엄 오르막길을 가시다가 그만 주차된 차 그늘 옆에 주저앉아버리십니다. 그 모습은 “이 힘없고 가난한 늙은이가 살기에는 너무 힘들어, 누구하나 들어주는 사람 없이 살기가 너무 막막해”라고 한탄하는 고함소리 같았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친구나 이웃의 개념이 다릅니다. 내가 도움 받을 만한 사람이 친구나 이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친구요 이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약한 자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때 진짜로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 고전 중에 ‘예기’라는 책이 있는데 내용 중에 어떤 여인이 험한 산자락 무덤에서 서럽게 울고 있기에 그곳을 지나던 공자가 물어봤습니다. 여인이 대답하길 “ 이곳에 이사 와서 얼마 안 되어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죽고 조금 지나 남편이 당했고, 아들마저 오늘 호랑이에게 물려죽었습니다.”
다시 공자가 여인에게 “왜 이런 험한 산골에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여인은 “이곳이 비록 호랑이 무섭기는 하지만 세상에서는 이유가 되질 않을 것 가지고 차별하고 약자에게는 가혹한 정치가 없는 곳이라서 여기에 눌러앉아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진 자 위주로 사회와 종교가 돌아가면 이기적인 것만 설쳐 됩니다. 없는 자가 살 수 없게 되면 그렇게 살고 싶었던 가진 자들도 결국은 망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 것을 보장받고자 한다면 축 늘어진 채 좌절과 실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보듬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런 분들에게 삶의 능력과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며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더위에 조금은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힘을 얻고 복되게 살아야만 될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조금 있으면 해가 산 너머로 갈 것입니다. 그러면 시원한 그늘이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내리는 이슬로 처진 이파리들이 생생해지고 더 자라 담장 너머까지 뻗어갈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응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의미입니다.
귀찮아하던 삶의 무게들이 당신에게 힘이 되게 하십시오. 이 삶이 거룩한 믿음의 능력이요 영적비밀입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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