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갈대와 노인
갈대와 노인
요즘 비가 오니까 걸어 다니는 분들이 적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내리는 비에 야외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비가 잠깐 뜸한 사이 근처에 나갔습니다. 몇 분도 안 되어 추적추적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건물 처마로 몸을 피했습니다. 저 앞 사거리에서 우이천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시는 어르신 한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분은 뭔가 두리번거리면서 찾으신 듯싶었습니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자 제가 서있는 건물처마로 오셨습니다. 그분과 둘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그분은 “꼭 찾아야 되는데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이것 큰 낭팬데 어떻게 하지”하면서 중얼거립니다. 그래서 제가 “영감님 어디에서 오셨어요, 어딜 찾고 계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아 글쎄 10년 전에 딸이 여기 근처에 살아서 보름동안 있다가 시골로 내려갔는데 냇가를 건너갔는데 빌라하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네요. 전화를 해봤는데 전화번호는 바뀌었다고 말하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자니 비가 오니까 누가 택시타면 금방 간다고 택시 타버리고 해서 내려갈 돈도 없고, 잠 잘 곳도 없고 걱정입니다.”라고 말하십니다. 제가 생각해봐도 그분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분을 어떻게 해드려야 될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해봤습니다. “어르신! 혹시 주소를 아세요?”라고 여쭤봤더니 “잘 몰라요, 4.19사거리만 알아요.”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시면 당시에 그 근처 냇가를 건너면 바로 찾아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냇가 건너는 쪽에 생각나는 것 있으세요?”라고 다시 물어보니 한참을 고민하듯이 생각하시더니 “아 맞아 생각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 냇가 이쪽 편은 커다란 갈대가 한 묶음쯤 있었지 그래서 난 내천 길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그 갈대가 있는 곳에서 시작해서 건넜었지. 그런데 지금은 갈대가 없어요.”라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씀하십니다. 이 어르신은 서울 딸집에 계실 때는 늘 갈대가 기준이고 이정표였습니다. 그래서 우이천에 있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어도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집을 쉽게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이천이 정비되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빌라며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뚝 방 길도 달라졌습니다. 주변 환경이 수없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눈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갈대 한줌을 길을 찾는 표적과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에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을 기준으로 살면서 삶을 낭비하고 헛고생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고민이 되어서 경찰에게 전화를 할까했는데 마침 그 근처에 순찰 나온 경찰차가 있기에 부탁을 드려서 경찰과 함께 가셨습니다. 우리 삶이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처럼 여기고 살면 내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들은 내 자신을 지탱해주기는커녕 내 인생을 피곤하고 처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장마에 언제 쓸려갈지 모르고 인간의 계획에 의하여 하천이 언제 재정비될지 모르는데 한 때 무성하다가 무기력하게 꺾여버리는 갈대가 기준이요, 목표처럼 여긴다면 삶을 스스로 사기 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갈대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참 본질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망, 인내, 천국, 사랑, 믿음같이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또한 계속 붙잡아야 할 가장 확실한 변할 수 없는 본질들입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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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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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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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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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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