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익숙한 것이 주는 무서움
익숙한 것이 주는 무서움
수십 년 동안 평화롭던 해일이 일어나 일본 후크시마 해변을 강타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선조들이 살아오면서 듣고 경험했던 어떤 해일보다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위력을 보였습니다.
진도 9에 가까운 지진 후에 발생된 이 해일은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크고 작은 배들을 내륙 5km 가까이 옮겨다 놓았고, 길거리에 주차된 자동차를 지붕 꼭대기위에다 조각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올려놓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잘 설치 관리된 지진 및 해일 감지기가 발령해준 안내방송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대한 악마처럼 검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삼키려고 덮쳐오는 물기둥에 달리기를 잘한 듯 얼마나 효과가 있었겠습니까? 몇 차례에 걸쳐 다가오는 것 중에 처음에 밀어닥치는 해일은 규모가 작지만 액면그대로 믿고 죽을 줄 살줄 모르고 높은 곳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 지역사람들은 수없이 이런 해일 경보를 들었고 대피도 해왔습니다. 그래서 해일과 지진에 대한 대피방법이나 대처요령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별 탈 없이 잘 지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력했던 이번 지진 해일도 처음에는 약한 것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하고 그저 힘껏 고지대를 향해서 달렸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기도 전에 거대한 수마는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고 그 마을 안에 있던 집들과 미처 피하지 못한 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삼켜버렸습니다.
그중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어르신들도, 안내방송을 듣지 못하고 낮잠을 자던 사람도, 밀폐된 공간에서 고음으로 노래를 연습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종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시에 자주 겪던 해일로 여기고 저지대 옥상이나 집안에 있는 필요한 물건을 챙겨 나오려다
물에 휩쓸리고 말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대해서 안일하게 대처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번에도 별일 없이 넘어갔으니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내가 알아서 요령껏 잘 할 건데 뭐?”라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 중대한 실수는 우리가 늘 경험했던 일과 장소에서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분은 34년 동안 사출기를 가지고 일하는 기술자였습니다. 그부분에 대해서는 달인이라고 할 정도로 눈감고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수요일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한 참 하던 중 자기가 늘 아끼던 기계에 손목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삶에 진솔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은 단순히 익숙할 뿐이지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에 대한 완성도 높거나 빠를 뿐이지 예상치 못한 일까지도 방어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운전도 초보자는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를 내지만 오랫동안 운전한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과속을 하거나 신호를 무시하다가 큰 사고를 냅니다.
이것이 익숙한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협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위협들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 익숙한 친구에게 더 예의 바르십시오. 익숙한 예배생활에 초보자처럼 긴장하십시오. 익숙한 일들에 정신을 더 집중하십시오.
삶에 진솔하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삶에 쓰나미가(해일)가 온다는 정보를 받았으면 힘을 다해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욱더 영적인 건강을 해치는 해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를 보면 물에 휩쓸리고 불에 탈 것 건지려고 머뭇거리지 말고 영적인 생명을 건지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너희가 벌써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영적인 각성이 이뤄져야할 때라는 말씀입니다. 진솔한 신앙은 주님의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지진이나 해일이 몰려오는데도 깊은 단잠에 빠져 헛된 꿈속에서 해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피난처 되시는 주님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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