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비움으로 채워가는 위대한 능력
고난주간을 통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모습이 읽혀집니다.
자연에 충만해져가는 봄기운만큼이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로 채워지기를 함께 소원하며 격려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이 아니고 사먹을 돈이 없어서 사먹지 못하고 줄줄이 배를 움켜쥐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끼니를 굶어서 쌀을 모으려는 어리석은 구두쇠도 아닙니다. 또한 고난주간 덕분에 그냥 생으로 굶으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데 금식핑계삼아 살을 빼려고 하는 다이어트도 아닙니다.
금식은 자신이 죽었다는 의미이며 자신의 몸의 통제권이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은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고 갖다 주지도 않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욕심도 없습니다. 고함을 지르면서 핏대를 세우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잘 낫다고 우쭐거리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을 이기겠다고 우격다짐도 하지 않습니다. 누가 바보라고 해도 대꾸하려고 속에서 부글거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평안하게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아픈 곳을 수술하기 전에 환자복을 갈아입으면 의사가 금식을 명령합니다. 내가 내 몸을 다스릴 수 있지만 이제는 의사가 다스립니다. 누우라면 누워야 되고 걸으라면 걸어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중이라면 적어도 내 몸을 다스리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몸이 자신을 얽어매놓고 맙니다. 결국 내 자신이 통제하려는 그 몸과 전투하다가 아주 중요한 힘을 다 쏟아버리고 맙니다.
적어도 금식한다는 것은 내 몸의 필요한 것과 싸우지 않습니다.
금식은 다른 사람의 멍에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탐심과 이기심 때문에 주변사람들을 칡넝쿨처럼 칭칭 동여매놓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풀어야 나 자신도 주변사람들도 자유하게 됩니다.
금식이 단순히 식사를 중단한다고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고생 아닌 고생이 될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지금까지 통제하며 살았던 나대로 삶에서 이제는 통제권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은총으로 채우려는 거룩한 도전의 기회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죽은 시체가 밥을 먹지 않듯이 육신적인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주님의 다스리심을 진정으로 요구하신다면 주님은 그만큼 역사하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채우려고 노력해도 채울 수 없었던 신령한 것들을 금식을 통해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내 뱃속이 넉넉하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열심히 그 배를 채우기 위해 온힘을 다해 살았던 삶에서 오히려 비움을 통해 무엇으로 삶의 힘을 얻는지를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움으로 채워가는 위대한 능력을 얻으십시오.

오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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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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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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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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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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