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
작년이맘때에는 폭설이 내려서 일찍 꽃피었던 것들이 얼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초여름 이어지더니 늦더위가 계속 진행되다가 초겨울이 되어버린 나머지 이제는 사계절이 아니라 두 계절만 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뒷동산 진달래 능선에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봄이라는 계절은 떠나지 않고 여전히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봄은 모든 것이 일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쁩니다.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에 휘어질 듯 꺾일 듯하던 말라 버렸던 나무들이 움을 틔우고 있습니다. 줄기는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끈질긴 생명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닌 것들은
생명의 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 염화칼슘으로 인해서 시멘트가 깨지고 패여서 두 달 전에 시멘트로 발랐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식물이 싹을 내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참 생명력은 그것이 보잘 것 없는 풀잎이라도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산에 있는 많은 참나무들이 벌레에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이 벌레들은 참나무 이곳 저 곳에 파고 들어가서 나무자체를 관통시키므로 더 수액이 올라갈 수 없게 되어 말라서 죽게 만듭니다. 산림청에서는 급한 대로 나무 링거액주사를 놓았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크게 잘 자란 참나무들이 고사했습니다. 그중에 애정이 갔던 갈참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겨울 내내 커다란 플라스틱 물병으로 만든 링거액을 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밑단에서 조그맣게 새싹이 움트고 있습니다. 기쁨을 주는 생명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육체적인 깊은 죽음의 맛을 보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담당한 군병들은 다시는 살아날 가망이 없도록 예수님을 철저하게 죽였고 돌무덤에 넣어둔 시체마저도 몇 겹으로 둘러서서 지켰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흘 만에 살리셨습니다.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것은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반드시 일어납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영적인 생명력이 있어야 죽어도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가운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셔야 됩니다. 그분이 계시면 부활의 씨앗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기쁨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 부활의 기쁨을 함께하기 위하여 이번 주에는 주변 어르신들을 모시고 섬기는 자리를 갖습니다. 진정으로 예수 생명력을 지닌 그 믿음의 자세로 대접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묻습니다. “당신은 교회는 다니는 것 같은데 영적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있다면, 믿음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라고 사방에서 무언의 질문합니다. 예수님을 머리 삼지 않는 문화적인 신앙생활로써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습관이 아니라 진정한 예수님 믿는 믿음의 능력을 소유해서 부활의 기쁨으로 살아갈 때에 세상들의 그런 질문이 멈춰지게 됩니다.

이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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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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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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