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토끼와 거북이
사람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남은 또 다른 자아를 보게 해주고 밖으로 볼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해주기도 합니다.
어른과의 만남도 있을 수 있고, 후손과의 만남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만남자체는 도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될 때는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그래서 첫 만남은 보이지 않는 탐색전도 하게 될 것이고 평가전도 벌이게 됩니다.
사실 인격적으로 수준 높은 사람은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하기에 탐색전이나 평가전이 무척이나 짧습니다. 평가전에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진솔하게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사람들은 평가전에서 이기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외모적인 가꿈입니다.
그것이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이나 좋겠지만 내가 상대방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을 몸매로 나타내려고 한다면 철부지거나 고장 난 의식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평가할 수 있는 항목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상동효과를 연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얘기는 참으로 모순이 많지만
개성과 상관없이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할 뿐 아니라 철학이 빠진 방법론만 파생시켰을 뿐입니다.
이 얘기 중에서 크게 실수한 것 중에 토끼가 거북이보다 우수한 동물이다는 것입니다.
비록 게으르다고 해도 동물로서의 능력은 토끼가 훨씬 뛰어나다는 인식이 숨겨져 있습니다.
또한 정당하지 못한 겨루기가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공정사회를 말하는 그 공정한 기회와 규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토끼는 육지에 사는 동물이므로 당연히 뜀박질을 잘 할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거북이는 물에서 사는 동물이므로 뜀박질보다 헤엄치는 것에 능력이 대단합니다. 서로 다른 역량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한쪽 편에 유리한 겨루기를 하면서 이것을 기반으로 판정하는 것은 불공정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에 현장에서 약자와 강자가 있고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있고 건강한자와 건강하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외형만 보고 평가하거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공정한 영혼을 주셨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고귀한 영혼을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편견과 오해를 뛰어넘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영혼의 고귀함을 볼 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육신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만남은 상대방의 영혼을 열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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