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소금물과 저수지
소금물과 저수지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거북스러운 사람이나 환경을 접하면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누구도 고난이나 고통을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성장하는데는 육신도 있지만 마음의 성장도 중요합니다. 마음의 성장은 육체처럼 성장 통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속에 수도 없이 일어나는 짜증이나 원망을 다스리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고치려면 내 자신이 수없이 인내하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훈련을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그릇이 바뀌지 않으면 별반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그릇을 새롭게 하는데 제일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제자중에 늘 짜증과 원망이 끊이질 않는 도시 출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들녁을 한참 걷다가 더워서 주막에 잠깐 쉬었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주막주인에게 말해서 물 두컵과 소금 한 움큼 가져올 것을 시켰습니다. 제자의 물컵에 가져온 소금을 넣어주며 마시라고 했습니다. 소금물을 마신 제자는 투덜투덜하면서 짜증으로 가득 찬 얼굴로 담너머를 보는 척하며 스승이 너무 얄미워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스승은 한참동안을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자의 투덜거림이 멈추지 않자 스승이 눈을 지그시 뜨고서 "물 맛이 어떻더냐?"고 물어봤습니다. 제자가 원망과 짜증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짜요~ 짜단말이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주막집에서 일어나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큰 저수지 근처에 다다르자 얻어온 스승 몫의 소금을 저수지에 털어놓고 저수지 물을 마실 것을 말했습니다. 제자에게 "물 맛이 어떠냐?"고 묻자 제자는 " 이렇게 시원하고 맛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좋습니다"라고 기뻐서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 삶의 많은 소금같은 시련도 고통도 따라온다. 그러나 컵에 있는 물은 짜고 저수지에 있는 물이 단 것은 모든 것은 똑같지만 마음의 크기 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맛을 담는 그릇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저 댐 처럼 바다 처럼 넓고 깊다면 삶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아직도 저 댐처럼 마음이 크거나 깊지 못합니다. 그래서 입에서 쉬지 않고 개념 없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우리 마음을 제일 쉽게 키울 수 있습니다. 받고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의 자세를 갖고 신실함을 다할 때에 마음의 크기를 쉽게 바꿔놓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10월 한달 동안 열심히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자 합력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고 오히려 피곤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을 위해서 누군가 눈물로 호소하고 나의 교만한 행동과 눈짓을 받아가면서도 애타는 마음으로 다시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저 영혼에 무관심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자매와 친구들을 위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늦을 수 가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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