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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나의 성탄절,주님의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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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탄절, 주님의 성탄절

성탄절이 가까이 있습니다.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동이나 번화가 일대에는 거의 두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많은 크리스마스 물품들이 나와 있고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들이 넘쳤 났습니다. 경기가 좋으면 길거리는 이때쯤 대면 크리스마스 세일이니 하면서 특수를 누리려고 온갖 구실을 다 붙여서 활용을 합니다. 심지어 술집이나 백화점은 교회보다 더 화려하고 멋진 성탄장식을 해놓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거기에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고백이 없는 화려한 장식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케럴송 속에 구원과 자유와 평강과 은혜가 들어가 있는 가사는 전체 중에서 5%도 안 됩니다. 그저 흥얼거리고 즐겨할 뿐입니다.
정작 잔치의 주인은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이 없는 잔치를 준비하고 잔치를 벌이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주인공 되는 잔치는 우리 심령 속에 구원의 은총을 누릴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주인으로 계실 때부터 우리 심령은 어둠 속에서 빛을 소유한 기쁨이 있고 눌려있던 곳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에 넘치도록 반짝거리는 트리보다 내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태양처럼 반짝이는 심령의 장식이 있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경제의 경기 따라 움직이는 심령의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는 영롱한 기쁨의 별들이 우리 삶 속에 반짝이는 이번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오시면 믿는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갑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을 아십니까? 하물며 양들도 주인의 음성을 정확히 압니다. 주님이 이 시대를 향하여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 음성을 듣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세상으로 나가라는 소리가 들리나요?
성지순례를 하다가 베드윈 족속들이 양들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양떼들이 목동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함께 간 일행 중에 목동처럼 양을 불러 보았더니 "흥! 넌 누구야?"라고 하는 듯이 양들은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양들은 정확하게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일까요? 그것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정확하게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핵심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구분하는 양들은 저절로 목자를 따라 움직입니다. 목자가 아닌 사람이 목자 흉내를 내면 양들은 기가 막히게 구분해서 알고 그 가짜 목자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이 성장을 잘하려면 '목자의 음성'을 간직하고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믿는 자들을 붙들려고 해도 진짜 목자의 소리를 따라 다니는 사람은 더 많은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가고 있는지 아닌지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예수쟁이로 구별되어지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인정받고 진짜는 가짜로 둔갑되는 이 시대에 아름다운 성도들은 예수쟁이의 향기와 열매로 지켜갑니다. 황헌식이라는 사람이 쓴 '진짜와 가짜'라는 재미있는 얘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가난하여 체계적인 그림 공부는 하지 못하였으나, 그림 실력만큼은 천재적인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라 불리는 화가를 찾아가 어떤 심부름이라도 할 테니 조수로만 써 달라고 간청을 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청년이 보기에 화가의 그름은 자기의 그림보다 더 나을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가가 퇴근을 하면 그 화가의 그림을 똑같이 모사하여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모사한 그림이 너무 정교하고 똑같아서 아무도 눈치 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스승화가가 죽고 그의 유작 전시회가 열렸는데, 청년의 가짜 그림은 평론가들의 최고의 찬사를 들으며 화가 생전보다 10배는 더 높은 값으로 판매가 되었습니다.
청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가의 진짜 작품을 들고 나와 이게 진품이라고 외쳤으나, 그는 사람들에게 미친놈으로 취급을 당했고 평론가들에게 가짜 판정을 받아 오히려 유족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무이한 기준은 예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나의 성탄절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주님의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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