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줄넘기 인간관계
요즘은 옛날 보다 놀이 공간이나 종류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더욱 특징적인 것은 혼자 놀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마 핵가족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가족 시대에는 공기놀이를 해도 자기 집안에 형제자매들이 대여섯명씩은 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울려 어떤 놀이든 수용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덜렁 혼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서 하는 컴퓨터game이나 각종 game도구 및 오락실에서 밀폐된 채 혼자만의 game이기에 또한 혼자만의 기쁨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game 도구와 이겨도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고함지를 이유도, 상대방도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밤새도록 피시방에서 눈이 충혈되도록 game을 즐깁니다.
그런데 넉넉한 품성이나 여유가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치고 귀찮아하고 불만스럽고 폐쇄적으로 바뀌어져 갑니다.
어릴적에 동네 누이들이 몇명만 보이면 고무줄 뛰기나 줄 넘기 같은 것을 자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누나들은 참 민첩하고 재주있게 합니다. 그러나 누구하나 소외됨이 없이 돌아가면서 game하도록 되어 있고, 처음부터 아주 높은 데서 잘한 사람만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고무줄의 가장 낮은 위치에 설정해서 어린 꼬마도 더불어서 할 수 있도록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릎 위로 허리춤 위로 가슴 위로 머리 위로 그 다음에는 두손을 든 높이로 기준을 잡아갑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좀더 키가 자라서 더 높은 곳을 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놀이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놀이들은 더불어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고작 놀이하는 것들의 종류는 손가락 숫자에 불과하지만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더불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줄넘기를 보면 참 묘미가 있습니다. 양쪽으로 두사람이 서서 줄을 돌립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줄 안으로 박자에 맞추어 들어가서 펄적펄적 뛰면서 일체감을 유지합니다. 이 사람들이 줄 넘기를 할 수있도록 양쪽에 줄을 돌려주는 사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방향성을 갖고 일치시켜야 하고, 같은 줄을 붙잡고 같은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가 떨어져 있지만 서로는 상대방의 뜻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 줄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줄 수 있습니다.
같은 뜻의 줄을 붙잡고 있으면 물리적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을지라도 하나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렇듯 서로 사랑타령만 하는 사랑의 구걸자가 아니라 가족들이, 성도들이 주님의 뜻을 붙잡고 누구나 와서 쉴수 있고, 놀 수 있는 포용의 줄잡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사랑타령만하는 사람은 줄을 붙잡고 줄을 돌리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줄사이에 와서 뛰고, 쉬고, 노는 것을 보면, 조급해하고 부러워하고 덩달아 뛰고 싶어서 붙잡던 줄놓고 줄 안으로 가버립니다. 그 순간 줄은 사라지고,결국 줄넘기는 더 이상 할수없게 되는 것도 모르고 무작정 가버립니다.
성숙한 성도는묵묵이 누구든지 와서 쉬고 뛰라고 기꺼이 줄 잡아주면서 그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에 만족해하며, 언제든지 줄 잡아주는 넘치는 포용력을 갖고 있으며 영적인 풍성함이 있습니다.
줄넘기속에 담겨진 배움이 우리 삶으로 녹아졌으면 합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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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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