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아나로그 시대의 양심을 그리워하는 디지털시대
아나로그 시대의 양심을 그리워하는 디지털시대
얼마 전에 메스컴에서 발표하기를
고기 집에서 고기를 팔 때에 무게를 재는 저울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100그람을 샀는데 먹어보면 왠지 양이 적어 보인 다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막대기 저울에 저울추라는 쇠뭉치를 올려서 재는 시대는
약간 적게 오거나 많이 올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서로 간에 더 신뢰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상거래를 하자고 나온 저울이 디지털 저울입니다.
마지막 단위까지 숫자로 표시해주는 참 똑똑한 저울입니다.
누구하나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표시를 해주니까
참으로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디지털 저울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소고기 한 근을 이집 저 집에서 사서 달아보았는데 각자 차이가 났습니다.
심지어 어떤 곳은 100g가까이 적게 주었습니다.
기계가 속인 것이 아니라 기계를 다룬 사람이 속인 것입니다.
즉 앞에서는 믿게 하려고 디지털 저울만 쓸 뿐이고
그 뒤에서는 기계에 다른 수치를 입력을 시켜서 속여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계는 틀렸다고 주인에게 반항하지 않습니다.
옛날 손저울은 속이면 주인의 양심이 없더라도 놓으면
저울 추가 솟아올라버리기라도 했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데도 주유소마다 똑같이 1만원어치를 넣으면 용량이 다르답니다.
가끔 주유할 때마다 "이 주유소는 제대로 넣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꿈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디지털의 정확한 용량표시 뒤에 감추어진 천박한 양심은
아나로그 시대보다 더 큰 사회의 불신을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수치나 기계는 못된 양심으로도 얼마든지 굴러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치와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양심이 얼마나 바르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양심을 가져야 된다는 무언의 강력한 요구입니다.
기계화되고 수치화(계량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불신을 더 많이 일으키고
더 광범위하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 때 우리나라와 다른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 전자투표계산기를 사용하자고 했습니다.
초정밀 디지털 수치와 기계를 가지고 화성을 다녀오고 그러는데
전자개표기를 쓴다는 것은 어렵지도 않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수작업을 끝낸 것을 액셀처럼 총체적으로 계산하는 정도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양심적인 사람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나로그 시대의 양심을 그리워하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깨끗하고 선한 양심을 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김현숙
작성일
김현숙님의 댓글

이선용
작성일
이선용님의 댓글

박현숙
작성일
박현숙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