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그 사람을 넘으려고 하지 말고 당신을 넘으십시오.
삶의 멋은 뭔가 도전할 때에 생동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도전들을 해봅니다. 그런데 늘 그러고 그런 상태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주저앉습니다. 그리고는 주변 여건 때문이라고 핑계되면서 "다시 도전 하십시오"라고 말하면 "해봐도 소용없더라고요"라고 말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원인은 하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넘으려고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이 이미 안 되도록 설정을 해놓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설정한 가이드라인과 한계를 두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고무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튀어 오릅니다. 세게 내리치면 더 높이 오릅니다. 탄성이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높이에 천장을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세게 내리쳐도 그 이상을 오를 수 없습니다.
자신을 넘어야 합니다. 누구를 넘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나는 이정도 이상은 안돼"라는 가이드라인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설정해놓은 공간 안에서만 뭔가를 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세계가 높아지거나 넓어질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몇 억을 벌 때까지는 안돼, 집살 때까지는 안돼, 몇 시까지는 안돼, 몇 킬로그램을 뺄 때까지는 안돼, 이럴 때도, 그럴 때도 안돼 "라면서 콘크리트 옹벽을 치듯이 처 놓았기 때문에 내 자신도, 내 자녀도 우물 안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앙생활도 이런 식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수도 없이 우리 마음이 문을 두드리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교제를 원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열어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니 주변 사람들은 교회 다닌다고 하니까 예수님 만나고 변화된 삶을 기대했다가 실망만 하고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런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해도 변화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만 다니는 사람은 예수쟁이의 거룩한 모습은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변화 받는 예수쟁이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언제까지 자신이 설정한 가이드라인에 안주하면서 뛰어도, 뛰어도 제자리인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시렵니까? 외모에는 자존심 상해하면서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자신의 가이드라인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신이 당신을 넘는 길밖에 없습니다.
당신도 당신을 이기지 못하면서 바라는 것은 너무나 크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넘으십시오.

송상용
작성일
송상용님의 댓글

엄지
작성일
엄지님의 댓글

윤종순
작성일
윤종순님의 댓글

k b j
작성일
k b j님의 댓글

정세윤
작성일
정세윤님의 댓글

김세련
작성일
김세련님의 댓글

이선용
작성일
이선용님의 댓글

강지완
작성일
강지완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