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변화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노출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똑같이 같은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꼭 개성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가치관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참으로 다양한 것 같습니다. 진솔하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경험에 비추어서 동일한 것은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철학에 견주어서 아니다 싶으면 말씀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내적, 외적으로 삶이 변화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경건한 생활을 훈련하는데 있어서 때론 귀찮고 피곤하게 여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도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든지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정도는 다 있게 마련입니다. 잘 넘기는 사람들은 피곤함과 구차함을 너머 변화될 자신을 보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넘어갑니다.
성도라면 쉴 틈 없이 자신을 예수님 앞에 노출시켜서 거룩한 생활에 대한 도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차츰차츰 변화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자기 노출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옛 모습으로 쉽게 전이되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노출이 없으면 물론 위선자로 바뀌게 되는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게알리스바디아스라는 가까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소크라테스를 만나면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끝마다 "나는 네가 싫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이 친구를 만나기만 하면 친구의 부족한 부분을 예리하게 꺼 집어내서 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자주 만났습니다. 서로 만날 때마다 이 친구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 친구의 부족한 모습이 소크라테스라는 사람 앞에 드러남으로 인해서 마음이 조금은 불편하고 창피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소크라테스를 버금가는 훌륭한 인격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늘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노출시키는 도전을 계속 해야 만이 세상도, 주님도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변화는 예수님 앞에 자신을 얼마나 노출시켜 더불어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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