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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착하게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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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산다는 것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환경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다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에서 공기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배출가스를 줄이려는 노력으로 1조 5천억원이 넘는 세금
을 투입하여 경유차를 대상으로 2년 동안 배출가스저감장치를 부착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대기 상태는 2년전보다 더욱 악화되었다는 결과보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나쁜 요소들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여기든 저기든 환경을 무시한 결과는 환경을 생각지 않고 얻어낸 소득을 모두 투입해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외적인 환경이지만 이런 주변 환경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의 내면 환경은 외적환경보다 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정상이라고 여겨지고 무질서가 질서보다 월등하게 좋게 여겨지고 인간의 존엄성보다 물질의 이해타산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가난하고 긴박한 채무자에게 성폭력을 행사하고 밤늦게 추심을 일삼고 있는 무뎌진 양심세계의 환경은 무엇으로 고쳐야 할지 심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사람들이 “착한 사람 없느냐”고 찾는 사람이 부척 늘었습니다. “이제는 외모도 중요하지 않아요. 제발 착한 사람이나 만났으면 합니다.”라고 어느 중소기업체 사장님의 절규에 가까운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단순히 순둥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착하다는 것은 선한 것에 대한 지속적이면서 실천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력을 지닌 것을 말합니다. 적어도 선한 의지력을 가져야 합니다. 즉 선한 목적과 강력하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공부하는 학생은 밤늦게 까지 그리고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서 공부합니다. 이것은 자기 실력과 자기 발전을 위한 투자인 것입니다. 부모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한다면 아마 졸고 있을 겁니다. 스스로 자기 의지력을 가지고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참으로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속 좁거나 미래를 볼 줄 모르는 형제나 부모가 있다면 “ 야!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했는데 잠 좀 자게 불 좀 끄라”고 짜증내고 신경질 부립니다.
어리석고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 내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시비를 걸면 과연 이런 사람과 의논을 하고 따른 다면 결과는 뭐가 되겠습니까?
절대로 발전하는 쪽이 아니라 퇴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해야 될 일이고, 칭송받아야 됨에도 비난하고 조롱하고 시비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착한 사람은 이런 것을 계속해서 지켜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보다도 못한 사람과 신앙에 대하여 의논하고 나온 것이 과연 고상한 신앙을 추구하겠습니까? 신앙생활도 착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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