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물리적인 느낌과 마음의 느낌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실생활입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생활을 한다면 생활 속에서 자신를 속이지 않는 생활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자신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을 속이는 것은 어떤 통제장치도 따르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결국은 자신을 양심상 가장 초라하게 만들고 맙니다.
믿음생활이란 단순한 신앙적인 호기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소금과 빛처럼 생활속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참다운 사랑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하던, 하지 않던 말은 타인과의 약속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자신을 사랑한 사람은 자신과의 약속을 중시여깁니다.
우리는 말을 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단순히 타인에게만 약간 미안한 감을 주었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멸시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듣는 재미난 말이 있습니다.
아들 부부는 일하러가고 손자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데리고지냈습니다.
날씨도 무덥고 해서 손자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습니다. 손자는 찬물을 틀어서 시원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뜨거운 물속에 몸을 푹 담그고 " 야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었!"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손짓하며 불렀습니다. "야, 참으로 시원하다, 너도 이리들어오고 싶으면 이물저물 틀지말고 들어오너라."라고 했습니다.
손자는 반가워서 즉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손자는 뛰어나오면서 짜증을 내면서 나왔습니다."세상에 믿을 놈이 없구만!"했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묘사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시와 때가 아주 중요합니다.
어른들은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아 뜨거워가 아니라 참 시원하구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사실은 물리적으로는 뜨겁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마음이 시원하면 뜨겁고 매울지라도 시원합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애들에게는 할아버지에게 속았다는 분개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은 모든 면에 지혜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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