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바라보면 땅의 것이 목적이 됩니다.
If you look at the land, the land's is the purpose
땅을 바라보면 땅의 것이 목적이 됩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나를 이끌고 갑니다.
내가 바라보는 쪽으로 움직여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라보는 쪽이 좋으면 좋은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연적인 우리 육신은 육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있습니다. 편하고 싶은 욕망은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도 편한 곳을 찾습니다. 육신을 좀더 편하게 해주고 머리를 적게 쓰고 마음을 적게 쓰는 것을 원합니다.
아나로그 휴대전화기 보다 디지털 전화기를 구하고 그것보다 더 많이 편한 스마트폰을 찾습니다.
이제는 에이아이 기능이 더 많은 스마트폰을 찾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편리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덕분에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10개 이상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육신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눞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좀더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기능을 위해 애써서 벌었던 돈을 다 거기에 소비합니다.
그 결과로 편하게 해주는 것들이 삶속에 우상이 되고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위의 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위의 것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땅의 것들에 중독된 것처럼 빠져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지 않도록 하려면 시선을 위의 것에 묶어둘 수 있도록 망을 씌우고 제갈을 먹이기라도 하라고 합니다.
땅에 것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러나 신앙의 위기속에 있는 자들에게 제일 먼저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삶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부터 해야 됩니다. 마치 학교도 가지 않고 놀기만 좋아하던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시선을 학교로 고정하는 일이 먼저 인 것과 똑같습니다.
위의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말합니다.
땅의 것은 썩어질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땅에 것에 익숙한 너의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가장 고귀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없으면 못살 것같은 것들이 오히려 이 세상에서 철저히 썩어질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땅을 바라보면 땅이 것이 목적이 되고, 위의 것을 바라보면 위의 것이 목적이 됩니다. 신앙의 위기에서 굳게 신앙을 지키려면 위의 것에 초점을 맞추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