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사랑의 구걸자인가 용사인가?
사랑의 구걸자인가 용사인가?
초코파이 하나에 만족함을 느낀 사람도 있고 최고급의 음식에도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조건이 내 마음속에 있는 한 음식점 메뉴처럼 골라서 할 것이다.
사실 음식점에 가서 제일 어려운 코스가 음식을 고르는 것이고 어떤 경우는 밥을 먹는 시간보다
선택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전문 음식하나 있는 곳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보통 사랑을 생각할 때에 세 종류로 나눈다.
첫 번째는 ‘만약에’식의 사랑이다.
뭔가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면 주어지는 사랑, 즉 “너 내 말 잘 들으면 뭐 해줄거다”,“나한테 선물을 준다면 나도 당신에게 그 만큼의 보답을 하겠오”, “당신이 성공하고 새로워지면 그 때는 밀어주겠오”
이런 종류는 조건적인 사랑이며 그에 상응하는 댓가로 제공되어지는 사랑이다.
두 번째로 ‘때문에’식의 사랑이다. 상대방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들이나 행위 및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점들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당신이 너무 너무 아름답기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게 이렇게 잘해주시니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등등이다.
세 번째로는 ‘임에도 불구하고’ 식의 사랑이다.
이것은 조건이 없다.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한다.
나의 조건 때문에 내가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내가 형편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다. 내가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는 경우가 참 사랑이다.
우리의 행복은 자신이 이 세 가지 사랑종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많이 달라진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사랑해주실 뿐이다.
끝없는 인내심을 갖고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이 사랑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해서 말이다.
세상에서처럼 사랑받기 위한 조건을 채우려고 몸부림치며 사랑의 구걸 자가 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주님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다. 이 주님의 사랑을 입는 것처럼 쉬운 것도 없다. 그저 주님을 내 중심에 모시는 것이다. 사랑의 구걸 자에서 사랑의 용사가 되길 주님은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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