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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정상만 보고가지말고 지금 앞에 놓인 발걸음에 충실하면 정상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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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만 보고 가지 말고 지금 앞에 놓인 발걸음에 충실하면 정상은 온다.

산악인들의 꿈은 높은 산들을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말라야에 있는 16개의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엄홍길씨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봉산을 어릴적 부터 오르내렸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도봉산 외딴 집에서 한 참 산길을 따라 내려가야 학교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덕에 산은 그에게 익숙하고 산이 그의 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환경을 원망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지난 번 '로체샤르봉'을 오른 후 가진 다음 인터뷰에서 " 히말라야 등정에서 늘 중요한 것은 정상에 오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에서의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등정에서도 엄지발톱이 모두 빠지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전 등반에서는 동료 2명이 산에서 죽었습니다. 92년에 동상에 걸려서 오른쪽 발가락 두 개를 절단했고, 98년에 안나푸르나 등반 때는 로프에 걸려 발목이 꺾여서 2박 3일 동안을 줄을 의지하여 살려고 사투를 벌여서 팔꿈치로 기어서 내려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의 정상을 오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오르지 못한 곳에 자식이라도 오르게 해서 대리만족을 얻고자 꿈꾸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죽을 힘을 다해서 인생의 최고봉에 오르면 뭐합니까? 누리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환경을 누릴 줄 아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더 멋진 의미의 삶을 살 수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고 잠깐 아침 안개처럼 짧게 사는 생애라면 더 깊이 있는 누림의 삶이 꼭필요 할 것입니다.지난 달 23일 탈레반에 납치되어 자신의 석방기회를 다른 동료에게 양보한 이지영(여)의 멋진 모습에 탈레반도 감동을 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분수령에서 자신이 살 수 있는 카드를 남에게 준 것입니다. 그의 이런 모습에 탈레반이 이지영씨에게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건강히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잘 먹고 편히 있어요. 아프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딸의 메모를 전해 받은 어머니 남상순(66)씨는 북받치는 그리움에 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습니다. “자기도 힘들텐데 엄마 몸 아프지 말라고..”라고 하면서... 그날 저녁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의와의 인터뷰에서 이씨의 어머니는 “원래 남을 배려하고 심성이 착한 아이다. 딸이 남을 위해 양보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을 향하여 가다가 진정으로 그날 그날 누려야 할 땅을 다지지 않고 간다면 땅이 꺼진지를 모르고 가다가 낭떨어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발씩 주안에서 걷는다면 정상은 나를 향해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의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죽는 사람들의 수치를 조사해 보았더니,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질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젊고 늙고 간에 누가 언제 죽을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문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막상 내가 죽는다고 생각되면 죽음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앞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는데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입니다. 살 때야 그런 생각 잘 안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돈도 아니요, 건강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고 지은 죄의 문제입니다. 죄는 누리는 삶에서 최고의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정상만 올라가면 다 되는거야"라고 유혹을 받습니다. 정상은 문제를 해결 받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불법선거를 해서라도 대통령만 되면 다 덮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말은 "자유는 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자유할 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 할 수 있는 것은 죄에서 해방 받는 것이지, 정치·경제, 문화가 대단하다고 해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년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는 나이들어 가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모든 집착으로 부터 자유”라고 했습니다. 물질과 인기와 권력으로 부터... 이런 것에 대한 집착은 자연히 죄를 낳을 수밖에 없음으로 노년을 추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이런 모든 것에서 떨어져 지낼 것을 강조합니다.

주후 8세기 경 서부 유럽 기독교 국가를 전부 묶어 통일 국가를 이룬 위대한 황제가 있습니다. 샤를마뉴대제 입니다. 이 황제의 묘지가 약 200여 년 전에 발굴되기 시작했는데, 발굴에 참여했던 일꾼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샤를마뉴는 황제의 의복을 입고 손에는 홀을 쥐고 앉아서 무릎에 성경을 펼쳐놓은 채 손가락으로 성경 구절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마가복음 8:36절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천하를 통일한 황제요 모든 영화를 다 누린 사람이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사실은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알고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죽어도 사는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었으니, 그 만큼 복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먼저 믿음 안에 살아남아야 합니다. 세상 그 무엇을 다 이루었다 해도 믿음이 없으면 참되게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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