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칼을 든자와 수건을 든자
누구든지 힘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아직 얻지 못해서 힘을 쓰지 않을 뿐일 것입니다. 사실인즉 우리들 대부분은
권력을 좋아하거든요. 권력이 있으면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거저 따라 붙고, 주변에서
자기를 향해 고개 숙이는 모습에 우쭐거릴 수 있고 어깨 좀 펴고 사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칼은 이시대의 권력이요, 힘이요, 명예요, 대다수가 그렇게 얻기를 갈망하는 금력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경향의 우리들을 향해서 칼의 무능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유다의 배신으로 군인들이 밤중에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 함께 있던 베드로가 칼을 꺼내자
주님께서“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니 도로 칼을 집어넣어라, 너는 오히려 내일을 가로 막는구나”라고
호통을 칩니다. 예수님은 칼 대신 제자들에게 수건을 들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칼 대신 수건을 드시고 제자들의 허다한 실수와 허물을 덮어 주신 것입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허물을 자주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칼 가지고는 상처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허물을 덮어줄 수 없습니다.
수건은 눈물도, 상처도, 더러운 것도, 이마의 땀도 닦아줄 수 있지만 칼은 닦아줄 수 없습니다.
칼은 전쟁을 할 때나 쓰이지만 수건은 늘 쓰입니다.
칼은 권력을 향해서만 줄달음치지만 수건은 감싸고 부드럽게 하고 아픔을 싸매주는데 쓰이기 위해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자기 수중에 넣는데 가장 중요한 오른팔 격인 역할을 했던 장수가 전쟁 중에 상처로 심각한 상태에 있을 때에 문병을 가서 위로하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하라 내가 이 나라의 반절이라도 너에게 주마”, “대왕님, 나에게 하루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알렉산더가 눈물을 흘리면서“그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자 장수가 “차라리 이럴 줄 알았었다면 하나님이나 열심히 섬길 것인데”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갔습니다. 칼은 힘이 그렇게 많아 보여도 힘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수건을 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칼 들고 싶은 유혹에 일하고 돈벌고 공부합니까?
칼을 들면 보기는 좋지만 결국은 수건을 든 자를 찾습니다. 이 사회와 이 민족을 위해서 수건을 든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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