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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우리 모두가 희망의 메이커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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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희망의 메이커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어요.
희망을 여는 사람이 있나하면 있는 희망마저도
닫아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희망을 여는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수용하는 능력을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차이점과 다른 점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환경의 차이를 포용합니다. 자신이 부자일지라도 가난한 자를 차별한다든지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는 것에 구애됨이 없으며 권세가 있든 없든 모두를 똑같이 포용하는 자세를 가졌기에
그 사람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대단한 존재 때문에 모두가 희망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타인에게 희망거리가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이익수단으로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영적인 차이를 수용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보는 자세가 상대방의 입자에서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조화의 능력을 주기에 그 모임은 희망이 생겨집니다.
그리고 쉽게 지나치기 쉬운 것이 문화의 차이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억양이 다르기도 하고, 언어가 다를 수도 있으며, 피부색깔이 다르며, 인종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모두 수용할 때에 모두에게 놀라운 새 희망을 만들어 줍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는 베드로가 넘어야 할 포용력을 과제로 주어 위대한 희망의 메이커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게 합니다.
여기 나오는 세 양이 서로 다른 양입니다.
첫 번째. 내양을 먹이라는 arnion으로 갓 태어난 양입니다.
두 번째는 내양을 치라는 것은 probation으로 ‘청년기에 있는 양’입니다.
마지막의 내양을 먹이라는 것은 probaton으로 ‘성장이 끝난 양’을 의미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과 내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내 코드에 맞는 사람들만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알니온은 나보다 어리고 유치한 사람, 프로바티온은 나와 비숫한 수준의 사람
프로바톤은 나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으로 모두를 다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수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미래가 열리게 됩니다. 가정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지 막론하고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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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이선용님의 댓글
  우리 주님께서 기대에 찬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읽었습니다.정말 그런 희망의 메이커가 되기위해 오늘도 좁은 제 마음을 부여 안고 기도하겠습니다.'주님 제게 모두를 수용할 수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