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믿음은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할 때 자랍니다.
믿음은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할 때 자랍니다.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게 되면 그들의 생활 습관과 가치관 그리고 풍습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관계도 나라마다 모두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중국 사람이 의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작 의심이 많은 민족은 우리입니다. 중국 사람을 되놈이라고 하여
의심이 많다고 하지만 중국 사람은 한번 믿으면 목숨 거는 민족입니다. 한국 사람이 자주 쓰는
‘빨리 빨리’라는 말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격이 급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이것도 의심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의심하기 때문에 빨리 빨리 해야 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족마다 물건을 살 때 보면 성격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프랑스 사람은 “이거 최신형입니까?”라고 묻고 독일 사람은 “이거 튼튼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중국 사람은 “이거보다 더 싼 건 없나요?” 한국 사람은 “이거 진짜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부분은 ‘믿음’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라는
부분을 회복시켜야 할 사명에 대해 누가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까요? 정치인이 아닙니다.
교육가도 아닙니다. 곧 믿음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우리부터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신앙은 곧 믿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물론 하나님과의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간단하게 함축하여 대답하면
‘내가 누구냐?’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믿음은 누가 길게 기도하느냐, 누가 헌금을 잘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빨리 발견하는 것입니다. 즉, 제 자리
찾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면 믿음 있는자입니다.
믿음의 초점을 은사 받는 것으로만 끌고 가서는 안됩니다. 또는 기적을 체험한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또한 믿음의 깊이를 교회에 출석한 길이와 비교해서도 안됩니다. 믿음 있는
자는 깨끗한 거울을 가지고 있어 자신을 늘 바라보는 자가 믿음 있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이
있어야 사회에서 믿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 몸부림이 있는 자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 믿음입니다.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는 시간마다 자신이 어떤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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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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