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성공은 하고 싶은데...
성공은 하고 싶은데...
꿈을 이루기 위해선 내 자아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이기는 능력이 여기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과 빛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배추를 절일 때에 소금이 녹으면 배추만
보입니다. 그러나 안 녹으면 두 가지가 다 보입니다. 배추위에 뿌려진 대로 그대로 있습니다.
서로 따로 있을 뿐이고 남 같은 존재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금이 녹아지면 상대인 배추를 꼼작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주님이 자신을 죽일 때
모든 불순종의 역사와 사망의 권세를 다 이길 수 있었습니다.
소금이 배추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배추에 붙자마자 녹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기려고 많은 노력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이 지치고 맙니다.
자녀를 이기려고, 시누이를 이기려고, 상사와 동료를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서로 모두 이긴 자는 아무도 없고 서로 상처만 남아 있습니다. 그 상처를 보면서
다시 전의를 불태워 미움과 증오를 더 많이 소유할 뿐입니다.
이기는 길은 나 자신의 변화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겸손을 향한 변화, 나 자신이 더
땀을 흘리는 변화, 내가 한발 더 양보하는 변화, 내가 더 참는 변화, 나 자신의 모양을 포기하는 변화=소금이 자기 자신의 모양을 주장하지 않고 완전히 포기해서
녹아 없어짐으로써 자기 모양의 존재가치조차 추구하지 않는 변화는 결국 모양의 위력보다
내용의 위력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들이 실재적인 이김을 주는 것입니다. 배추는 소금의 모양에
죽지 않습니다. 결정체의 모양이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겉모양인 결정체의 모양을 더 추구합니다. 내용의 능력이 없는 것에 더욱더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주님은 너희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능력이요 아름다움은 결정체가 아니라 소금의 근본 맛인 짠맛입니다. 좋은 짠맛을 낼
때에 능력이 인정받는 것이요 존귀함도,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도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녹으면 상대방만 보이지만 실상은 상대방은 나로 인해서 침투당해서 나의 영향권 내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그 속에서 모든 움직임을 줄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 속에, 사원들 속에, 가족들 속에. 구역원들 속에, 학생들 속에, 동료들 속에 실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아버지의 모양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녹아지는 것이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주님은 주님으로서 녹아질 때에 우리 삶 속에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움직이시는 능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는 즉 녹아져서 나 자신의 겉모습만
추구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녹아지기 위한 십자가의 노력과 수고가 결국은 예수님이
하셨던, 녹아짐으로 얻은 승리의 결과를 함께 걸머지고 가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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